"유죄를 선고하시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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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인천사태 등과 관련, 소요죄 등 위반으로 구속 기소된 민통련의장 문익환목사(68)에 대한 첫공판이 열린 7일 상오10시.
피고인자리와 방청석사이를「담」처럼 막고 앉아있는 2열의 푸른색 경비교도대. 간혹 귀엣말을 나누기는 해도 하나같이 굳은 표정의 변호인단 방청객들.
개정과 함께 문목사가 교도관에 이끌려 나왔다. 수갑과 오랏줄, 그러나 웃음 띤 얼굴.
인정신문뒤 문피고인은 자신의 의견개진시간을 요청했다.
『나에게 유죄를 선고하시오.』단호한 첫마디, 문목사의 말은 계속됐다.
『유신이후 4차례 법정에 서서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지금 그 유신의 허구와 죄악은 낱낱이 파헤쳐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내려진 유죄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역시 오늘의 역사는 말해주고 있읍니다.
그때 그들처럼 이 자리에서 유죄를 받아야 나는 오히려 역사의 무죄를 받을 수 있읍니다.』70을 바라보는 노인답지 않은 카랑카랑한 목소리.
문목사는『학생들보다는 오히려 나에게 무거운 처벌을 해달라』며『갇혀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모두 자유로와 질때까지 나는 옥에 남아있겠다』고 말했다.
『왜 현 사법부의 심판을 받아들일 수 없는가』를 1시간여 진술한뒤 문목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공판이 끝났다. 문목사가 법정을 떠난뒤 방청하러 왔던 60여명의 구속자 가족들은 법원구내에서 연좌시위에 들어갔다.
아시안게임의 열풍이 지나가자 다시 우리의 우울한 정치가 눈앞에 드러나고 있었다. <김용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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