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한잡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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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우리는 아직도 부지불식간에 일본 왕을 「천황」, 그 아들을 「황태자」 라 부른다. 그러나 이런 칭호는 아주 마땅하지 않다.
왜냐하면, 첫째 「천황」 이란 말속에는 「황제」라는 뜻이 담겨있는데, 「황제」 라는 것은 많은 왕들 위에 군림하는 왕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일본 왕 밑에 많은 왕들이 있지 않다.
둘째, 남의 땅을 빼앗아 식민지 국가의 왕으로 있는 것도 아닌 지금, 그런 뜻을 내포하는 듯한 용어를 쓰는 것은 제국주의를 은연중 흠모하는 그들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이다.
세째, 그들 자신이 그들의 왕을 하늘이 시킨 왕이라 생각하고 「천황」이라 부른다 할지라도 천하의 공의로 보아 그들의 왕은 과거 「하늘」 과는 반대개념의 존재로서 살상과 부도덕한일을 수없이 저질렀고 수없이 속인 자며 그 후예인데, 그늘이 요사스런 말장난을 떤다고 한국인까지 따라서 부도덕한 속임말을 쓰는 것은 옳지 못하다.
네째, 영국왕은 옛 식민지들의 연합체인 영연방안에서도 모두「왕」이라 부르는데 일본 왕만 유독 「천황」이라 부를 이유가 없다.
다섯째, 서양사람들이 일본왕을「킹」또는 「르와」「레」「레이」 라고 부른다하여 일본사람들이 칼을 들고 발끈하지는 않는다. 일본사람자신들도 「왕」 이라고 부르는 일이 있다.
이렇게 볼 때 일본 왕을 「천황」이라 부르는 것은 스스로를 모욕하는 짓이며 가소로운 일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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