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자의 취업 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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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치열한 경쟁의 문을 뚫고 대학에 들어가 졸업을 해도 취업이 어렵다면 개인적으로 건 사회적으로 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대졸 실업자가 많은데 내년에는 호황으로 기업의 일자리가 대폭 늘어나는데도 대학 졸업생 10여만 명이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형편이라니 더욱 그렇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의 고급인력과잉현상은 대졸이란 간판 없이는 행세를 할 수 없다는 왜곡된「학력」중시 풍토에서 비롯되고 있다. 게다가 문교당국의 무정 견한 대학정원 정책으로 전공과목에 따라서는 사회나 기업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일부 사양길에 접어든 분야의 전공생들을 대량 배출, 취업난을 한층 부채질하는 결과마저 빚고 있다.
이 같은 대졸 취업난 속에서도 전자·반도체·유전공학 등 첨단기술 분야의 일자리가 급격히 늘어나 내년 봄 전공분야 졸업생을 모두 소 화하고도 사람을 못 구해「구직 난 속의 구인난」이란 기현상마저 빚고 있다는 것은 한마디로 정부의 장기적 인력배치 계획이 실패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합리적인 사회란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나름대로의 보람을 갖고 사람다운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사회를 일컫는다. 튼튼한 기초인력을 바탕으로 고급인력이 제구실을 하는 피라미드가 아니고 도리어 고급인력이 남아도는 역 피라미로의 사회적 구조를 갖고 효율적인 사회발전을 기하기 어렵다. 뿐더러 그것은 개인적인 낭비며 사회적인 부담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하긴 고급인력의 과잉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만 제기된 것은 아니다.
대학교육이 대중 교육 화되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공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21세기에 이르면 미국은 적령인구의 73%가, 일본은 전 인구의 60% 가량이 대졸이상의 학력을 갖게 되리라는 분석보고도 나온바 있다. 학문에 대한 개인적인 향상 노력을 제도로 억제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는 않다.
그러나 한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고도 정보사회에서「학력」이란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장식물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 시대를 살아가려면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새 정보, 새 지식을 흡수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현재의 학교교육만으로는 대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학력주의 타파는 복합적이고 지난한 문제다. 문교부가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정부와 기업이 협조한다고 해서 간단히 풀릴 문체도 아니다.
그러나 대학으로, 대학원으로 이어지는 무작정 진학 풍토가 사회문제로 제기된 이상 어떤 방식으로든 이를 정리하고 극복하기 위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의 교육심의위원회는 학력주의 타파정책으로 기업의 학교지정제도 폐지, 고졸·대졸로 구분되는 고정적인 채용방법의 재검토, 기업 안에서의 능력주의 촉진 등을 건의하고 있다. 이런 방책에 대해 일본 안에서도 너무 형식적이란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논의를 통해 해결책이 찾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학력주의 타파와 함께 당장「발등의 불」이라고 할 수 있는 분야별 인력 수요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문교부의 대학정원 정책의 대담한 전환이 있어야 한다. 대학교육은 10년 후 20년 후를 내다본 것이어야지 눈앞의 인력수급 사정에만 매달려서는 곤란하다.
현재의 여건상 불가능하게 보이지만 언젠가는 대학의 학과별 정원도 대학 자율에 맡기는 방향에서 정원 정책은 정립되어야 한다.
대학의 학사행정에 일일이 개입하고 간섭한 결과의 하나가 전공별 고급인력의 불균형으로 나타났다면 더욱 더 그와 같은 정책전환은 절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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