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외국어 기피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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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87년도 대입학력고사 지원에서 제2외국어를 선택한 학생이 3만2천여명으로 전체의 4·4%에 불과했던 것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73만 지원자의 95.6%는 실업이나 가사과목을 선택하고 있다.
대학에서 학문을 하려는 지원자들이 제2외국어를 배우기보다는 득점이 쉬운 실업이나 가사 쪽을 편향적으로 선호했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에 선택필수과목이었던 제2외국어를 실업 및 가사와 함께 선택2군에 포함시킨 새 문교정책이 초래한 결과다.
물론 이 결과만 놓고 대입학력고사 과목을 줄인 문교부의 조처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다만 이처럼 제2외국어가 철저히 기피되는 현실에선 우리 고교의제2외국어 교육과정이 정상 운영될 수는 없을 것이라는데 깊은 우려가 있다.
이것은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화하는 추세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교육현실이 분명하다.
국가간의 정치·경제·문화적 교류에 외국어가 필수적임은 두말할 것이 없다. 그 때문에 독일의 고교에서는 제3외국어까지 가르치는 판이다.
그 점에서 대입학력고사의 제2외국어 기피사태는 교육정책상의 중대문제로 인식되지 않을 수 없다.
출제관계자는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출제를 쉽게 해 제2외국어 선택자가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얻게 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임시변통일 뿐, 문제의 근본을 바로잡지 않으면 안된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은 두 가지를 생각 할 수 있다.
첫째는 제2외국어와 실업·가사과목을 별개의 선택 군으로 하는 것이다.
학생의 부담을 줄인다는 명분에는 배치될지 몰라도 대학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이는 불가피하다.
물론 제2외국어를 선택필수과목으로 하는 것은 고교의 전반적 상황으로 봐서 어려움이 있겠으나 독·불·중·일·노·스페인어로 선택 폭을 넓히면 학교마다 한두가지 제2외국어를 중점 교육 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많이 해소될 것이다.
이 같은 방안이 어렵다면 둘째의 선택이 가능하다.
공통필수다, 선택이다를 정하지 않고 대신 대학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다.
대학이나 전공학과들이 각기 선택과목을 정하도록 하여 학생들이 자기의 적성과 능력에 맞춰 이를 따르는 방법도 있겠고 대학마다 제2외국어 선택자에게 가중치를 주어 선발하는 것이다.
이들 방안 중 어느 것이 되건 간에 적어도 우리 대학의 학문하는 풍토를 진작시키며 동시에 고교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꼭 실현되어야 한다.
제2외국어의 중요성은 한편으로 외국어라면 영어만 생각하는 미국위주의 편중적 교육경향에서 탈피할수 있는 폭넓은 세계관도 키우리라 믿어진다. 문교당국의 새 조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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