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한국」의 신데렐라 양영자·현정화|금메달은 두 홀어머니 품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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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아버지 해냈어요.』
현정화 (17·부사계성여상)는 우승이 확정된 순간 하늘나라에 있는 아버지 현진호씨 (84년 작고·당시48세) 의 다정했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부산에서 선원연수원 식당의 조리사로 일하며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해온 어버니 김말순씨(46)의 얼굴이 겹쳐졌다.
25일하오 8시55분. 현선수의 매서운 스매싱이 한국여자탁구를 세계의 정상으로 끌어올린 순간 부산에서 상경, 딸의 열띤 경기모습을 지켜보던 어머니 김씨는 탁구선수로 평생을 살다간 남편을 생각하며 눈물을 삼켰다.
같은시간 어머니대신 부산집을 지키던 언니 형숙양(19, 회사원) 은 동네사람들의 축하인사에 파묻혔다.
『정화의 얼굴 모습과 탁구하는 스타일이 아버지와 똑같다는 말을 들어왔는데 이제 정화가 아버지의 못 다이룬 꿈을 이루게돼 지하의 아버지도 편한 잠을 이루실것같다』고 울먹였다.
현진호씨는 50년대말 탁구명문이었던 부산상고의 주전선수 출신. 그러나 국가대표선수로는 뽑히지못해 그것을 평생의 한으로 생각해왔다.
현선수가 국교3년때 호기심에서 탁구를 시작했을 때 아버지 현씨는 『아버지 대신 세계적선수가 되어야 한다』 고 격려하며 딸이 정상을 향해 선수생활을 해나가는동안 경기장마다 따라다니며 지성으로 뒷바라지했다.
현선수는 85년 사상최연소의 나이인 15세로 국가대표로 발탁돼 「탁구계의 신데렐라」로등장. 그러나 이때 이미 아버지 현씨는 병환으로 세상을 뜬 뒤.
현선수는 국가대표로 뽑히자마자 첫출전한 국제대회인 영국 주니어오픈에서 4관왕의 영광을 차지했다.
그러나 현선수의 순조로운 승리가도는 지난겨울 탁구최강전에서 양선수에게 완패를 당했다.
『그때의 충격을 너무 컸어요. 주위에서 「제2의 이 에리사」라며 모두 추켜세우고 나 자신도 내가 최고인줄만 알고있었기에 우물안의 개구리가 광활한 바깥세상을 접하는 기분이었달까요.』
당돌하다는 평을 받고있는 현선수는 이 기회를 자신의 탁구를 되돌아보는 좋은 계기로 삼았으며 친언니처럼 따르는 선배 양선수의 무거운 파워드라이브를 꺾기 위해 더욱 매서운 전진속공을 다듬는 노력이 이어져 여자 탁구의 주전선수로 자리를 굳혔다.
한국여자탁구를 13년만에 다시 세계정상으로 올려놓은 에이스 양영자선수(22·제일모직) 는 두차례의 변고로 한때 은퇴설까지 나돌았던 노장. 투철한 신앙심과 정신력으로 역경을 이겨 영광을 재현했다.
양선수는 이리남성국교3년때 특별활동으로 라켓을 손에 쥔후 이일여고 1년때 국가상비군으로 뽑혔고여고3년때 서울오픈 3관왕, 83년 동경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개인단식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호사다마, 예기찮은 병마가 양선수를 덮쳐왔다.
중2때 다쳤던 팔꿈치부상재발과 간염. 84년제7회아시아선수권·85년제38회세계선수권대회에서 지난날의 기량을 잃은채 중공은 물론 북한에 마저 연전연패,「한때 반짝했던 선수」 로여겨지는 억경에까지 몰렸다.
『저를 엄습한 고독감과 절망감은 말로 다 표현할수 없어요. 은퇴까지 결심했었지요.』
어릴때부터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던 양선수는 한적한 시골의 기도원을 찾아가 단식을하며 자신감을 되찾기 시작했다.
『이대로 주저앉을수는 없다는 신념이 샘솟더군요. 죽기 아니면 살기로 새로 부닥쳐봐야겠다는 각오가 점점 강해졌어요.』
신통하게도 그때부터 번번히 재발되던 부상의 통증과 간염의 후유증은 말끔히 사라졌고 양선수는 85년 가을부터 1년여의 공백을 메우기위한 필사적인 트레이닝에 돌입했다.
국가대표합숙훈련동안 새벽이면 남보다 2시간씌 일찍 일어났다. 서브가 원하는 곡선을 그을때까지, 주특기인 드라이브 스매싱이 원하는 지점에 날카롭게 꽂힐때까지 연습에 몰두했다.
잠잘때도 탁구치는 모습을 눈에 떠올리는 「이미지트레이닝」 을 병행했다.
매일 탁구일지를 기록하며 훈련성과를 분석하는 자체평가도 쉬지않았다.
노력은 지난3월 탁구최강전에서 나타났다. 자신의 부재시 탁구계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현정화선수를완전하게 이기고 우승했다. 경기가 있던 25일밤 서울대체육관에는 양선수의 홀어머니 박복엽씨 (59·전북이리시창인동1가114)가 양선수언니 양희씨(39)와 함께 이날 상오7시상경, 딸의 경기를 응원하다 감격의 승리후 래커룸에서 딸을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김동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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