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86 현장|한점마다 함성…전국이 탁구열기|중공 감독도 ."우리가 졌다" 자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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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도심거리는 한산>
○…2·5g짜리 하얀 공1개가 전국민을 묶었다.
남자탁구에 이어 여자탁구가 중공을 꺾고 13년만에 사라에보의 영광을 되찾는순간, 일찍 퇴근해 안방에서 대중공전을 지켜보던 시민들이나 미처 귀가하지못해 회사근처 다방이나 음식점등에서 TV를 지켜보던 시청자들도 서로 얼싸안고 환호하는등 온통 축제분위기.
특히 현양이 첫세트에서 4번의 듀스끝에 하양을 꺾은뒤 2세트에 지고 마지막 3세트에서 일방적으로 리드해나가자『현정화, 현정화』를 외치며 열광.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도심지거리는 차량통행과 행인이 거의 없었다.

<손바닥이 아프다>
○…대회본부측은 경기시작직전 관중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줘 응원의 열기를 고조시키기도.
선수들이 1점씩 차분히 득점을 계속 할때마다 우뢰와같은 박수와 함성으로 응원하던 관중들은 우리팀이 위기에 몰릴땐 『영차영차』 등을 일제히 외쳤는데 경기가 끝난뒤 한 관람객은 『오늘 경기는 응원3, 실력7』 이라고 나름대로 평가하며 『손바닥이 아프지만 본전생각은 전혀 없다』 며 후련하다는 표정.

<멍하니 천장만봐>
○…경기가 끝난뒤 패전지장이 된 중공의 허소발감독은 경기결과가 믿어지지 않는다는듯 한동안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쓸쓸히 퇴장.
경기후 남자부경기가 아직 덜 끝나 시상식이 1시간정도 지체되자 중공의 감독·선수들은 경기장을 빠져나와 불꺼진 「선수라운지」 에서 외롭게(?)시상식을 기다렸는데 허감독은 솔직이 패배를 시인.
허감독은 『탁구는·공의 속도가 매우 빨라 공이 러버에 맞는 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한데 경기장이 너무 시끄러워 아 소리를 거의 들을수 없었으며 네트가 팽팽하지 않아 평소감각이 흔들리는등의 문제가 있었다』 고 지적하면서도 『이런 문제가 없었더라도 우리는 졌을것』 이라고 완패를 자인.
허감독은 이날의 패인을「헤지리」선수의 서브가 안좋았고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잃었다』 고 분석한뒤 『한국팀의 전력이 무섭게 향상돼 이젠 우리와 대등한 수준에 오른것 같다』 고 칭찬.
허감독은『경기란 질때도있고 이길 때도 있는 것이니만큼 빨리 잊고 다음 경기에 대비하겠다』 면서『남은 개인전과 복식경기에선 선수일부를 교체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후배가 든든하다>
○…13년전 유고의 사라예보에서 세계를 제패했던 이에리사씨(33)는 후배들이 중공을 꺾고 2번째 세계정상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룩하자 눈물까지 펑펑 쏟으며 감격.
관중석에서 목이 쉬도록 응원하던 이씨는 13년전 자신이 경기를 벌일 때보다 더 가슴을 죄고 긴장했다며 『세계 최강적을 맞아 조금도 흔들림도 없이 싸워준 후배들이 한없이 든든하고 자랑스럽다』 고 흥분.
이씨는 특히 『최근 탁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다소 낮아진 느낌이였는데 중공을꺾어 탁구계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기폭제가 될 수 있는 것으로 믿는다』며 『남은 경기에서도 최선을다해 이번 아시안게임이 탁구발전의 계기가 되도록 열심히 싸워줄것』 을 후배들에게 당부.

<자오지민 안나와>
○…당초 우리팀은 이날 경기에 중공측이 「자오지민」선수를 내보낼 것을 예상하고 이 선수에 대비한 훈련을 집중적으로 해 왔으나 갑자기「헤지리」 선수가 기용되는 바람에 처음엔 당황했었다고.
그러나 「헤지리」 선수는 우리팀이 경기하기엔 훨씬 편한 선수여서 『오히려 잘됐다』 는 기분으로 경기에 임했다는 후문.
「헤지리」 선수는 이날 경기에서 양· 현선수에게 2단식을 모두져 우리팀의 승리에 결정적 기여(?)를 하기도.

<담배마저도 끊고>
○…우리팀을 승리로 이끈 박종대감독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즐기던 담배까지 끊는 무서운 각오로 일관해왔다는 후문. 박감독은 평소 흡연량 하루 1갑정도의 애연가였으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려고 담배를 끊을 결심까지 했다는것.
탁구팀은 또 지난5월 합숙에 들어간 이후 1단계때는 외출을 열흘에 1번꼴로 제한했고 2단계부터는 아예 외출을 없애는등 자제를 해왔음이 밝혀져 이날의 승리가 결의 관심도를 반영.
경기강엔 신화사통신기자2명, 인민일보4명과 사진기자7명등 10여뎡이 몰려들었고 중공의 CC-TV도 와서 경기를 중계.
그러나 자국팀이 무너지자 이들은 『이 경기까지 질줄은 몰랐다』 며 풀이 죽은 모습으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시상식까지 구경>
○…경기가 끝난뒤에도 남자부의 경기가 계속되는 바람에 시상식이 1시간정도 늦어지자 관중들은 자리를 뜨기가 아쉬운듯 대부분 끝까지 남아 시상식을 모두 지켜보았다.
시상식엔 김집선수단장·「오키무라」 국제탁구연맹 수석부회장등이 나와 메달리스트들을 축하해 주었으며 당초 「파하든 OCA회장이 여자우승팀을, 최원석탁구협회장이 남자팀을 시상하기로 예정돼있었으나 「파하든 회장이 갑작스런 이유로 불참케되는 바람에 최회장이 남녀팀을 모두 시상.

<일,우리팀에축하>
○…시상식이 끝난뒤 남녀 모두 우승한 우리팀선수들은 함께 모여 기념촬영을하기도 했고 일본선수들도 자기들끼리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으나 우리팀에 일격을 당한 중공선수들은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대조적인 분위기.
일본선수들은 이 자리에서 우리팀의 안재형·현정화선수등 중공을 물리친 수훈감독들의 등을 두드리며 축하를 해주기도.

<컵라면 모두팔려>
○…25일 탁구경기장엔 하오2시 입장한 관객들이 밤10시가 넘도록 경기장을 뜨지않아 경기장내 매점과 간이식당은 허기를 채우려는 관객들로 크게 붐벼 종업원들이 즐거운 비명.
가장 인기를 끈 품목은 구내매점의 컵라면으로 20박스를 준비한 것이 동이나 추가로 20박스를 급히 실어날라야 했으며 판매대앞에는 「얼른 한술뜨고 경기를 지켜보려는 사람」 들로 장사진.
현대백화점에서 설치한 2곳의 구내 스낵코너에선 김밥이 각각 3백∼4백개씩 팔렸고 식사대용의 어묵도 날개돋친듯 팔렸다.

<입장권 완전매진>
○…중공을 이긴뒤 탁구를 보려는 사람들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서울대에 마련된 경기장주변에서는 각종 해프닝이 만발.
1만여명의 시민들이 새벽부터 경기장으로 전화를 걸어『표가 있느냐』 고 물어와 출입담당관실은 물론, 모든 사무실의 전화기가 불이나 직원들이 응답에 매달리기도.
입구매표소에는 인파가 1백여m나 늘어섰고 하오2시쯤 표가 완전매진되자 표를 못산 사람들은 섭섭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리기도. 회사원 김재익씨(31)는『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조퇴까지하고왔는데 그냥 돌아갈수 없다』 며 『들어갈수 있을때까지 버티겠다』 고 한동안 자리를지키기도.
일부시민들도『한명나올때마다 1명씩 들여보내달라』『2시경기는 포기할테니 6시경기에 들어갈수있는 우선권이라도 달라』 고 떼를 쓰기도했고, 첫날부터 한게임도 빼지않고 본 열성팬이라는 한시민은 『왜 이렇게 좁은 곳에 경기장을 만들었느냐』 며 큰 소리를 치기도.

<모교선 하조회>
○…현정화선수의 집인 부산시 가야2동599와6에는 이날밤 동네 주민 20여명이 현양의 언니 형숙 (19·회사원)·동생 지숙(15) 양과 함께 TV를 보며 열띤 응원.
현선수가 재학중인 부산계성여상에서도 야간부 22개학급 학생들이 교무실과 교실에서 TV를 통해 손에 땀을쥐게 하는 순간순간을 지켜보며 현선수가 점수를 딸때마다 환호.
계성여상 장영곤교감(60)은 『현선수와 함께 여자탁구팀이 중공선수를 꺾고 세계정상을 차지해 기쁘다』면서『26일 조례시간에 모두함께 축하박수를 쳤고 잇따라 열릴 개인전에서도 또 금메달을 따내도록 학생들과 함께 기도했다』 고 말했다.

<오빠혼자 tv봐>
○…25일 밤 여자탁구단체전이 계속되는 동안 이리시창인동114 양영자선수집에는 홀어머니 박복섭씨 (59)가 이날 새벽 양선수를 응원하러 고속버스편으로 상경하고 오빠 재원씨(27·원광대경제2) 혼자 TV를 통해 결승의 순간을 지켜봤다.
재원씨는 『동생이 한때 슬럼프에 빠져 걱정이 태산같았으나 불운을딛고 일어나 세계최강의 중공탁구를꺾어 한없이 기쁘다』 며 눈물을글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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