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를 나무 키우는 정성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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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의 권위 있는 경제전문 월간지 「넥스트」(NEXT·강담사간)지는 최근 발매된 10월호에서 삼성 이병철 회장이 밝힌 경영철학과 이념을 「나의 조직론, 인재육성의 비밀」이란 제목으로 특집을 했다. 그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편집자 주>

<나는 1주일에 한번은 반드시 용인에 있는 삼성종합연수원에 들른다. 그것이 그룹최고책임자로서 가장 중요한 일의 하나이기도 하고 또 한가지는 용인자연농원을 찾아가는 그 자체가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자연농원에 있는 나무는 그 한 그루 한 그루가 묘목일 때부터 자라나는 모양을 기억하고 있어서 직원에게는 어느 한 그루라도 소홀함이 없이 키우도록 일러 놓고있다.
국토 가꾸기의 모델사업이기도 한 1천 4백 50만평방m의 이 자연농원에는 소나무·오동·은행 등 경제 수 63만 그루, 밤·살구 등 유실수 5만 그루, 그밖에 과수 5만 그루가 있다.
언젠가 그중 한 그루가 말라죽은 일이 있다. 나는 즉시 담당자를 불러 지시했다.
왜 그 나무가 말라죽었는지 그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고 두 번 다시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상세한 대책을 세워 보고하라고.
단 한 그루가 잘못되었을 뿐인데 뭘 그리 신경을 쓰는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생물을 키우는 방법, 혹은 경영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내 생각의 기본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말랐을 때 그 원인을 똑바로 찾아내 대책을 세워두지 않는다면 다른 나무, 나아가서는 농원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나에게는 실제로 그 같은 쓴 경험이 있다.
지금부터 15년쯤 전의 일이다. 그룹 내 어느 회사제품이 수요에 응하지 못할 정도로 불티나게 팔린 일이 있다. 그때 공장장 이하 10여명의 직원이 거래선으로부터 얼마간의 사례금을 받은 불상사가 일어났다.
부정은 내가 가장 혐오하는 것 중의 하나다.
다른 직원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도 나는 단호한 조치를 하라고 그 회사 사장에게 명령했다. 그런데 사장은 한번만 용서해주자는 의견이었다. 그렇게 하면 문제를 일으킨 직원들도 한층 분발할 것이고 모든 책임은 사장이 지겠다는 얘기였다.
사장이라는 직책에는 경영의 재량권도 인정되고 있는 것이므로 나는 문제의 처리를 그에게 맡겼다.
그런데 그로부터 2년 후에 조사해 보니 고쳐지기는커녕 부정행위가 하역 작업부에까지 만연되어 부정에 물든 사람이 2백명이 넘었다.
작은 온정이 조직을 좀먹게 만들었던 것이다. 괜찮겠지 하고 눈을 감아준 것이 조직의 활력을 잃게 하고 회사를 부진에 빠뜨린다. 그것이 실업자를 내고 사회적 문제로까지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큰 온정」이 있으면 일견 냉정하게 보이더라도 부정의 싹이 자라기전에 막음으로써 위기를 사전에 회피할 수 있다.
한 그루의 나무에 신경을 쓰는 것은 이 같은 생각에서다.
미국 GE사의 간부와 만났을 때 산업용 로보트가 화제가 된 일이 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로보트의 의욕적 도입이 불가결하다』고 GE의 「웰치」 회장은 역설했다. 그 자체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굳이 『그 이상으로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투자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의 생산성을 가장 높이고 장래에 걸쳐 사업을 성장시키는 자산은 인재」라고 일관해서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인재」야 말로 삼성이라는 기업 그룹의 모든 에너지의 원천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삼성혼」은 한마디로 사회나 국가에 성심성의를 다하는 인재를 키우는 것이라는데 귀착된다. 내 머리에는 언제나 이를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고 있다.
「사업 보국」이란 말을 마음에 새기고 어려움에 부닥치면 「절망은 어리석은 자의 지혜」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77세의 지금까지 왔다.
「천시, 지리, 인화」…특히 인재의 혜택을 받아 삼성그룹은 12만명의 사원을 안고 85년에 약11조원의 매상고를 이루었다. 그룹전체가 납부하는 세금은 국가세수의 5·3%를 차지, 미 포천지의 「미국을 포함한 세계기업 랭킹」에도 42위에 올랐다.
그렇지만 경영자로서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자부할 것은 나에게는 없다. 다만 한가지 자랑스러운 것은 「인재를 키우는 것이 경영」이라고 믿고 그것을 관철한 것뿐이다.
생각해보면 과거 50여년간 내가 해온 일의 90%이상은 인사였다. 우수한 인간을 확보,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능력을 찾아 내 권한을 맡기고 더욱 자라도록 마음을 써왔다. 현재 「삼성은 인재의 보고」라는 말을 듣는데 그처럼 기쁜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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