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의끝」에 가야 돌파구 열릴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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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개헌국회」로 불러야할 제131회 정기국회가 20일부터 90일간의 회기에 들어간다. 국회 헌특위의 최종시한이 이번 정기국회 회기 말로 정해져있어 모든 국회운영이 개헌문제를 중심으로 부침하게 되어있다.
정국의 모든 관심이 이번 국회에서의 개헌협상의 성사여부에 쏠려있고 그 절충의 향방에 정국전체의 흐름이 달러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국회 내에서의 개헌협상의 전도에 대해 낙관할 수 있는 요소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국회 헌특위가 가까스로 구성되긴 했으나 그 동안 경과를 보면 여야의 개헌논의가 전혀 진전의 조짐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3개 정당이 권력구조 면에서 내각책임제와 직선 대통령제라는 서로 타협할 수 없는 개헌안을 제출했을 뿐이고 그 뒤로는 지엽적인 절차문제에 있어서까지 의견이 맞서 헌법 안에 대한 토론 한번 제대로 없었고 지역공청회 한번 열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 국회가 열린다고 해서 개선되리라고는 기대되지 않고 있다.
물론 헌특은 다시 가동될 수 있을지 모르나 권력구조 등 본질문제에 대해서는 진전을 기대할 아무런 요인도 아직은 나오지 않고 있다.
따라서 헌특의 1차 시한인 9월 30일은 그대로 넘어가 버릴 전망이다. 국회는 20일에 개회식을 하더라도 아시안게임 기간 중에는 사실상 거의 활동을 하지 않는 쪽으로 일정이 짜여져 있어 실질적인 국회는 10월 6일부터라야 가능하게 되어있다.
1차 시한이 이처럼 쉽게 넘어가는 것은 당초부터 여야 모두 1차 시한 자체에 결정적인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결과가 사태를 더욱 어려운 방향으로 몰아갈 구실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한다.
우선 9월 30일의 1차 시한이 개헌문제 논의의 진전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것으로 분명하게 드러나면 야당과 재야 일각에서 주장하는 국회 헌특 무용론이 강력하게 제기될 것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즉 지금까지의 국회 헌특의 운영을 지켜볼 때 앞으로 90일의 회기 안에 국회 헌특이라는 과정을 통해 개헌논의에 진전이 올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논리가 우세하게 대두될 것이며 이것은 야당과 재야의 장외투쟁의 명분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여론의 압력을 최종적인 가압 수단으로 동원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밀어붙이려 할 것이다.
이 같은 국면이 전개된다면 원내에서 개헌논의를 진행시키려고 하는 쪽에서도 개헌협상의 효과적인 추진뿐 아니라 강경 장외투쟁 주장을 상쇄하기 위해서라도 보다 강경한 원내투쟁수단을 동원하는 전략을 쓸 것으로 봐야한다.
그럴 경우 예산심의 등은 모두 헌특 운영이나 개헌협상에 연계되고 정상적인 국회의 운영은 기대하기 어렵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에 대응하는 여당 측의 전략구상도 어느 때보다 강경한 방향으로 흐르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여당으로서는 내각책임제를 내놓음으로써 이제 내보일 카드는 다 내보였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때문에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외의 다른 대안은 있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여건의 조성에 따라서는 야당내의 상당한 호응도 받을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런 상황분석을 근거로 여권은 야당과 재야·학생들의 장외투쟁에 대응하면서 여당 구상에 의한 개헌안의 추진에 필요한 여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강공책을 쓸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도달한 것으로 여겨진다.
여권으로서는 아시안게임이 끝나면 상당기간 정치적 부담이 없어질 뿐 아니라 재집권을 위한 정치적 여건을 구축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기는 것으로 분석하고있다.
여당으로서는 야당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저지하고 야권내의 틈새를 비집어 내어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강도 높은 압력을 가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강공 수단을 여권 내에서는 다각적인 방법으로 검토하고 있고, 재야·학생들이 주도하는 장외의 사태가 심각해질 경우도 가상해 비상한 대비수단들도 마련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견도 있는 것 같다.
여당일각에서는 만약 아시안게임 도중에 불상사가 발생할 경우에는 그와 같은 우려할만한 상황이 일찍 조성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하고 있다.
결국 여야 어느 쪽도 자기네들의 개헌안에서 한 걸음도 양보할 생각은 없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자기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모두 강경 수단을 사용할 채비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항간에는 정국의 위기설이 유포되고 있고 국회 자체의 전도조차 불투명한 것으로 내다보는 견해들도 대두되고 있다.
이런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 타협의 가능성을 찾아내 합의개헌을 이끌어 낸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개헌문제에 진전을 가져오려면 결국 어떤 결정적인 전기가 마련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와 같은 전기가 어떠한 형태로 이뤄지느냐에 따라 국회의 운영을 포함한 정국자체가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여야 모두 그러한 돌파구가 쉽사리 열릴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여당 측이 「벼랑 끝에서는 상황」에서 타협의 실마리가 풀릴 것으로 보는 것이나, 야당 측이 「위기적 상황」이 도래해야 협상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을 보면 결국 여야 모두가 정국이 끝까지 달아올라 파국 일보전의 위기국면에도 달할 때라야 진짜 협상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자칫하면 그 어느 쪽의 예상치 대로 움직여가지 않고 정치권의 통제력이 통하지 않는 파국으로 휘몰아 가버릴 위험성을 항상 내포하고있다.
여야는 이런 상황으로 몰리는 것을 피하고 국회 내에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고위 정치회담 등을 추진하는 등의 정치적 노력을 최대한 벌일 것으로 기대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여러 채널을 통한 실세 대화의 모색도 전개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여야간의 고위대화가 아무런 진전을 가져오지 못한다면 이번 국회는 회기 내에 합의개헌을 이뤄내기는 커녕 심각한 위기의 국면으로 밀려들어 갈 수도 있다. 여야, 그리고 각 정파의 현재의 정국에 대한 인식의 격차를 보면 이러한 상황으로 빠져 들어갈 위험성이 해소 될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오히려 비관적 전망을 더 유력하게 만드는 것 같고 그 때문에 이번 국회의 앞길을 더욱 점치기 어렵게 하고 있다.

<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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