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맹이 없는 장관회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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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연홍 정치부 기자】노신영 국무총리는 11일 국무회의에서 『장판들은 국민의 국정이해를 위해 기자회견이나 기자간담회를 자주 하라』고 또 한번 지시했다. 노 총리의 이런 지시는 취임 후 벌써 여러 차례 되풀이 된 것인데도 여전히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 실정이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이웅희 문공장관은 8월중 각 부처의 기자회견 또는 간담회가 모두 78회였다고 보고했다. 부처별로 3회 꼴인 이 숫자로만 본다면 매우 준수한 성적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뜯어보면 간담회가 아닌 환담회인 경우가 많고 제대로 뉴스가 나온 기자회견은 손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알맹이 없는 회견이나 간담회가 대부분인 것이다.
여북하면 총리까지도 『장관들이 비밀이 아닌 것도 비밀이라고 해 기자회견을 해도 보도된 내용은 알맹이가 없는 적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알맹이 있는 회견을 강조했을까.
대체로 관료들은 국민에게 시행할 정책을 국민이 모르는 가운데 결정하길 좋아하는 경향이다. 공식발표 전에 보도되면 출처 조사다, 해당 공무원 문책이다 하여·법석을 떨고 심한 경우 지문조사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얼마 전 모부 장관이 어느 자리에서 대전∼진주간 고속도로 건설계획에 관해 언급했다.
얘기를 전해들은 기자들의 문의가 장관실에 빗발친 것은 물론이다. 이에 대해 『내가 말한 것은 고속도로가 아니었다』-장관의 대답이었다. 『절대로 그런 계획은 없다』 담당국장의 설명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이부는 대전∼진주간 고속도로 건설을 위한 예산을 기획원에 요청했다.
직업공무원제도를 강화한다는 공무원사회의 낭보가 보도됐을 때 일이다. 공무원이면 모두가 반겨야 할 내용인데도 유독 담당부처는 보도의 확산을 막기 위해 절대 그런 것을 검토한 적도 없다고 잡아뗐다. 그러나 한달 뒤 집권당 대표가 당정협의를 거쳤다는 직업공무원제 강화방안을 공식 발표했다.
이런 예에서 보듯 보안을 의해서는 장관에서부터 실무자에 이르기까지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이처럼 국민이 국정을 아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한대서야 총리 지시대로 알맹이 있는 회견·간담회가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민주화 고창시대에 걸맞는 민주홍보 자세가 확립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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