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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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아침 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선선해지자 여름을 유난히도 탔던 아이들이 식욕이 조금씩 당기는지 한꺼번에 요구사항이 많아졌다.
큰딸은 잘 먹지도 않던 샐러드와 고기타령, 작은녀석은 어디서 보고 왔는지 잼만 달란다. 그러잖아도 벼르고있던 참에 잘 영글어 탐스러운포도를 한 광주리 사다가 반은 주스, 반은 잼, 그리고 포도주까지 담그고 나자 아이들은 물론 그이까지 덩달아 싱글 벙글이다.
먹을것이 귀해 꽁보리밥에 수제비도 감지덕지했던 옛날의 우리들에 비하면 요즘 아이들의 밥먹는 태도는 완전 귀공자(?)격이라고나 할까.
며칠전 휴일이었다. 한바탕 대정소를 하고나니 벌써 점심때가 지나려하고 있었다. 큰딸은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먹기에 바빴는데 작은녀석은 어떻게 된일인지 도무지 먹을 생각을 않는다. 『자, 착하지. 이제 형아니까 혼자 먹어』하며 숟가락을 건네도 마찬가지였다. 살살 달래고 어르면서 비위를 맞춰도 막무가내다. 이렇게까지 달랠 필요가 있을까 하는생각이 전혀 안드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미 돗자리를 마당에 펴두고 빨리 애들을 데리고 나오라는 옆집 아줌마의 성화에 나는 계속 사정(?)할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시골에 계신 어머님이 이 노릇을 한번 보시고는 『밥 달랠때까지 줄 생각도 말고혼자 먹어라』고 하셨을때 이상하게 들리기까지 했었는데 이제 생각하니 아이들에게 너무 과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부족한 일손으로 시달리는 시골에 계신 큰동서도 아이들과 이런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는 것을 본적이 없고보면 핵가족화로 많은 일에서 해방된 도시주부들이 신경 쓸데라곤 오직 아이들뿐이어서 버릇을 그르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샌드위치와 잼 하나만으로 한끼가 되기도 하지만 그 한끼를 먹기위하여 거쳐야하는 과정에 얼마나 많은이들의 노고가 숨어있는지 아이들이 짐작이라도 한다면 이런 밥투정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 추석에는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뵙고 아이들의 음식먹는 태도를 단단히 고쳐와야지. <조영미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420의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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