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속에 용해된 "색감의 신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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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84년 9월 호암갤러리가 개관 기념으로 아르누보 유리공예전을 열어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걸쳐 프랑스에서 일어난 장식성이 강한 아르누보의 유리공예 명품을 접한바 있다. 섬세하고 기품이있고, 그리고 감각적인 아르누보의 공예품은 결국 감각을 바탕으로 하는 장식과다에 떨어졌지만 그것들이 지니고 있는 인간생활에의 애착은 깊은 감명으로 남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또다시 호암갤러리는 「프랑스 유리예술 100년전」이라는 기획으로 84년보다 더 큰 규모의 유리예술품을 제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유리예술이라 하지만 그것은 오래된 기술과 전통을 바탕으로 해서 이룩해 놓은 독특한 예술이다. 그의 투명성과 고귀성·광휘성, 그리고 신비로운 조형의 효과는 유리라는 독특한 재료가 주는 예술의 경지다.
동양의 도자기공예가 같은 불의 마술로써 이루어지는 흙의 예술이라면 서양의 유리공예는 역시 불의 마술을 거쳐 이루어지는 광물적인 결과인 것이다. 그것은 치금술이 금속을 녹여 인류에게 유익한 금속공예를 만들 듯이 유리의 원료가 되는 광물을 녹여 유리라는 빛나는 물질을 만들어내고 그 물질을 미화시켜 하나의 예술적인 정지에 도달시키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여러부분으로 형성되었는데, 우선 프랑스 유리공예의 전통인 아르누보의 주변에서부터 시작되어 고도로 세련된 장식성과 색감의 세계를 조화시켜 감각적인 탐닉의 세계로 몰입시킨다.
지중해적인 사람들이 갖고있는 미에 대한 해석과 인생에 대한 태도가 한 개의 유리제품을 통해 역력히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높은 차원의 격조나 기품보다 무르익는 인간성의 탐닉이 그곳에는 용솟음치고 있다.
다음에는 아르누보에 이어지는 아르데코와 모더니즘의 세계가 전개된다. 아르데코는 아르누보에서 결실을 본 고도의 장식성이 더욱 더 발전하여 고아찬란한 세계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 다음 모더니즘의 세계에 와서 기능을 바탕으로 하는 근대화작업이 이어진다. 그리고 1950년대 유리공예의 부활을 거쳐 참신한 디자인이 바탕이 되고 있는 현대 유리공예에 이르고 있다.
한마디로 황홀한, 그리고 신비로운 프탕스 유리공예의 모든것이 호암갤러리에서 빛나고있는 것이다. <프랑스 유리예술 백년전을 보고 이경성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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