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괴의 미인계에 걸렸다"|공안당국이 밝힌 이병설교수 간첩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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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울대교수 이병설등 일당간첩사건은 북괴가 최근 극열좌경화 된 학원사태에 편승, 현직 서울대교수를 포섭해 서울대내에 거점을 형성케하고 독재정권 타도·민주화투쟁쟁취를 내세운 학생세력을 중심으로 한 노학연계투정등 사회각분야의 동시다발적 소요를 야기함으로써 대남적화를 노린 대표적 사건이란 점에서 충격적이다.
◇사건의 특징=이 사건은 ▲서울대의 지도급 현직교수가 유학중 북괴에 포섭되어 사제간의 유대관계를 활용하여 학원소요·노사분규·문제단체 등을 배후 조정한 점 ▲중·고교 교사를 비롯, 사회각계에 진출한 자신의 제자들을 포섭, 혁명동조세력으로 확대시켜온 점 ▲의식화활동으로 학사경고·제적 등 학업중단처지에 놓인 문제권 학생들을 비호, 졸업가능케 한 후 사회에 진출시킨 다음 동조세력으로 포섭하여 이들을 원격조정, 투쟁을 선동하거나 일본유학주선을 가장, 북괴공작조직에 넘겨준 점 ▲간첩 이는 지리학교수라는 신분을 이용, 작전용 우리나라 전지역의 5만분의1지도 2백15장을 수집, 북괴에 제공하고 군복무중인 제자를 이용하여 군사기밀을 탐지·수집해온 점등을 들 수 있다.
특히 간접 이는 대학교수라는 확고한 신분을 이용, 교수연구실에 암호표·불온서적 등을 숨겨놓고 아지트로 이용해 10년 동안이나 간첩으로 활약할 수 있었다는 것.
관계당국의 조사결과 이는 학생들로부터 「연구열이 높고 인자하며 학생들을 이해하려는 학생편 교수」로 평가받아 왔으며 운동권학생들은「사회과학지식 (좌경이론)을 갖춘 학생운동 경력이 있었던 운동권학생 편」으로 인식했고 동료교수들도「정부비판성향이 있으나 야당성정도」로 인식되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주민들은 이의 부인이 모범적인 반장활동을 해 이는 당연히 친정부쪽이고 덕망 있는 인물로 평가해오고 있었다는 것.
◇간첩 이병설의 행적=이가 일본에 간 것은 73년4월, 일본문부성초청으로 박사과정을 밟기 위해서였다. 75년10월 논문을 끝낸 후 귀국채비를 의해 선물을 살 돈을 마련하느라 아르바이트를 구하던 중 조총련 미인계에 걸러「육체관계」의 약점을 이용한 북괴공작원에 덜미를 잡혔던 것.
76년2월 노동당에 입당한 후에는 각종 명목으로 5차례 일본을 왕래하며 간첩활동을 해왔고 이북에 있는 형 이병천(60)의 가족(형수·조카)사진·편지 등을 받기도 했다.
특히 3차 도일(81년) 때는 변신방법·암호표 이용방법 등 간첩실무교육까지 받고 고유번호(5711)까지 부여받았다.
5차 도일(85년) 때는 작전용 한국지도 2백15장을 전달해 영웅칭호를 받기로 약속 받기도 했고 이때 김일성·김정일에게 보내는 「충성의 편지」를 붓글씨로 작성했다.
6차 도일(86년1∼2월)은 항공위성사진 연구명목으로 동경도립대학 객원교수자격이었으나 이는 이를 기회로 2차 「충성의 편지」를 냈으며 특히 7욀2일 중공과학원주최로 백두산에서 열리는 삼림보전 국제학술심포지엄에 참가신청 했다가 중공당국의 비자발급거부로 좌절되기도 했다.
이는 특히 보안유지를 위해 조직원포섭은 지도교수를 빙자해 교수연구실로 불러 은밀히 했으며 연구실안에 항공위성사진·북괴화보 등을 비치해놓고 포섭대상자 교양자료로 활용했다는 것. 또 가족들에게도 허점을 보이지 않기 위해 연구실 파일박스 안에 책자를 숨겨놓고 그 책속에 암호조직표·공작금 잔액·수집한 정보의 메모 등을 숨겨놓고 있었다.
◇미인계 공작=이는 검거 후 북괴가 미인계로 정수향을 접근시켜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선해 준다고 한 뒤 정과의 육체관계를 알고 나서는 북괴공작원이 정의 오빠라며 나타나 『약혼자까지 있는 처녀를 대학교수라는 사람이 이럴 수 있느냐. 책임을 지라』고 협박해 어쩔 수 없이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
관계당국은 북괴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약점을 이용, 영향력 있는 인사를 포섭해 남한에 지하조직망을 구축하려는 흉계를 드러낸 것이 이사건의 교훈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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