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산업과 경영핵솔의 문제―획일적인 상호출자 규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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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기업집중을 막기 위해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려는 정부의 구상은 해당 기업들만의 관심사 라기 보다는 기업조직과 운영형태에 관련된 경제계의 중요한 관심사다. 따라서 졸속처리보다는 광범한 업계의 토론과 의견수렴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개정안에서 정부가 구상하고있는 정책의도는 대기업 그룹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막고 기업공개와 재무구조개선을 유도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 같은 정책방향 자체는 물론 타당성을 주장할 수도 있다. 그간의 경제개발이 정부주도에 의한 집중적 공업화 전략에 의존한 결과 단기간에 고도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반면 기업의 경제력 집중과 독과점 적 시장지배 현상이라는 소망스럽지 않은 부작용을 수반했던 것은 널리 알려진 대로다.
그리고 이 같은 경제력 집중이 대부분 기업간의 직접적인 상호출자나 다양한 형태의 기업결합을 통해 이루어져온 점, 또 이 같은 기업집중 내지는 지배확충 형태가 국내기업의 최대 과제인 재무구조개선을 저해하고 있는 점도 충분히 인정된다.
대기업의 과도한 기업집중이 경제의 균형발전을 저해할 수준이라면 정책으로 견제해야 하며, 재무구조가 크게 문제된다면 이 또한 적절한 정책과 제도로써 대응책을 마련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원칙론에도 불구하고 기업집중과 연관해서 실제로 중요한 포인트는 균형감각과 현실감각이다. 전자의 균형문제는 대기업과 소기업간의 균형만이 아니라 시장경제의 속성인「규모의· 경제」또는 핵솔의 추구와 경제력 집중현상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현대의 기업경영은 날이 갈수록 다양화·다각화되는 추세며 당연히 그 결과로 기업조직이나 경영조직, 자본의 이동과 결합은 변전무쌍하기 그지없다. 이런 격심한 변화와 기동성, 경영의 복합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어떤 획일적 기준으로만 기업집중을 재단한다면 균형감과 현실감을 동시에 잃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더구나 현재 국내 산업계는 부실산업의 정비와 새로운 산업고도화전략의 실천에 착수해 있다. 보다 기술 집약적이고 경쟁력 있는 첨단산업화가 초미의 과제임을 고려할 때 자본이동과 결합의 급격한 제약이 어떤 부작용을 초래하지 않을지 우려된다.
현실적인 문제로 이들 대기업의 상호출자가 총 자본금의 50%가까이 이른 현실 자체가 이 문제의 급격한 개선과 마찰을 일으킬 소지 또한 없지 않다. 줄잡아도 1조원이 넘는 대량의 자본을 단기간 안에 처분해야 하는데 따른 부작용도 우려된다.
이번 개정안이 기 출자된 직간접 상호출자와 총액 한도 초과분까지 소급해서 규제하고 있는 점도 논란을 불러올 수 있으며, 민간의 주도와 자율확대라는 명분을 둘러싸고도 많은 논의가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여러 문제점들은 공청회나 국회논의과정에서 충분히 협의되고 업계를 포함한 광범한 입장수렴과 이해조정 과정을 거쳐야할 것이다. 그래야만 현실도 수용하고 법 개정정신도 살릴 수 있는 실효성을 찾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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