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보장이 먼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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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공무원은 정부의 형태와는 관계없이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의무와 책임을 갖는다.
공무원은 이 같은 포괄적인 책무를 다하기 위해 공정·청렴·복종의 의무 외에도 정치개입을 금하도록 되어 있으며 공무원 법에도 이 점을 뚜렷이 규정하고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공무원은 어느 특정 정권의 봉사자이기 전에 국민으로부터 수임 받은 국가 업무의 집행자임을 명백히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공무원의 기본적 입장이나 본분이 정부형태가 달라지거나 정권이 바뀐다 해서 본질이 변할 수 없고 그 지위나 신분 또한 흔들릴 수 없음은 자명하다.
최근 개헌논의와 관련, 정부·여당은 내각책임제 개헌에 대비해 공무원의 신분 보장 제 강화방안을 마련중이다.
특히 내각책임제 아래서는 정권이 바뀌어도 행정체제가 안정되어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성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이 공무원의 신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공무원에게 선심을 쏟기 위한 방안인지 얼른 구별이 안 된다.
예컨대 장관이 바뀔 때마다 인사원칙이 흔들리고 외부의 정치적 입김으로 인사가 좌지우지되는 병폐를 근절하는 방안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현행 공무원 법에는 공무원은 형의 선고나 징계처분 또는 이 법에 정하는 사유에 의하지 않고서는 그 의사에 반해 휴직·봉임·면직 등을 당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공직사회 풍토가 과연 그런 법대로 지켜지고 있는가.
정실과 청탁인사는 여전하고 말썽과 잡음이 뒤따르는 경우를 흔히 본다.
이로 인해 공무원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불안한 가운데 공직사회가 안정성을 이른 예가 비일비재하다.
상사의 의도와 눈치를 항상 살펴야 하는 풍토에서는 행정의 독자성이나 정책결정 과정에서의 자율성, 공평성, 중립성의 유지가 힘들다.
직업공무원제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위한 필수요건이다. 공무원이 정치의 도구나 시녀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행정을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데 주된 목적을 두고 있다.
이 같은 행정의 여러 원칙들은 정부의 형태가 내각책임제든 대통령제든 상관없이 행정본래의 기능을 살리고 공무원의 신분과 지위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져야 할 원칙들이다. 그럼에도 직업공무원제를 강화한다면서 공무원의 신분보장 측면보다 주택을 지어 주고 의료와 연금인상 등 처우개선 측면에 비중을 둔 것은 순서가 어긋난다.
공무원 징계기록을 말소해 주는 것만 해도 공문서에 기재된 공적기록을 무슨 근거로 말소할 수 있느냐도 문제이거니와 징계의 백지화가 공무원 신분보장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공무원의 징계기록은 일반형사 범죄인의 전과기록처럼 영구 보존토록 되어 있다.
따라서 과거의 징계사실을 불문에 부친다는 등의 조치는 혹시 가능할지 모르나 기록의 완전말소는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과거의 잘못」을 임의로 백지로 돌린다면 공무원 사회의 기강은 물론 흠 없는 대다수 모범 공무원들에게 미치는 사기와 영향은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공무원 처우개선이 크게 보아 신분보장과 전혀 무관하지 않으나 공무원 신분보장에 뜻이 있다면 공무원 충원의 비정치화를 비롯한 인사제도의 선진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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