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진상이 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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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 역삼동 룸살롱 폭력살인사건은 사건발생 5일이 지났는데도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사건의 규모로 보나, 범행의 잔인성으로 보나, 80년 이후 처음 노출된 조직폭력배라는 점에서 이 사건은 세인의 관심이 각별하다.
범인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며 범행의 경위는 어떠하고 범인들의 배후에는 누가 있는지 모두가 궁금할 따름이다.
더구나 이 폭력조직의 범행동기부터가 미스터리 같다.
지금까지의 보도로는 기성조직과 신흥 조직폭력배와의 관할이나 세력다툼이 주요동기라고도 하고, 마약 또는 밀수와 깊숙이 관련된 일본 등 국제범죄조직까지 개입된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
또 8·15특사로 풀려났다가 사건당일 살해된 회생자가 옥바라지를 소홀히 한데 앙심을 품고 보복할 것을 두려워해 미리 역습한 것이라는 등 구구한 얘기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어느 것 하나 자신 있게 내놓지 못하고 수사의 갈피조차 제대로 못 잡고 있는 인상이다.
우선 사건의 성격마저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이번 범행이 우발적이라고도 했다가 계획된 범행이라고 정정하는 등 경황이 없는 것 같다.
범인들의 수도 처음에는 9명이라고 단정했다가 다시 8명으로, 마지막에는 6명으로 축소했다.
이러한 가운데 위장 자수한 줄도 모르고 수사가 곧 마무리될 것이라고 낙관하기도 했었다. 지금까지 이사건과 관련돼 자수한 일행은 6명이고 경찰이 자력으로 검거한 용의자는 단 1명뿐이다.
그 많은 수사요원이 5일 동안 수사한 것치고는 실적이 너무 보잘것없다.
사건현장에 목격자가 많았고 범인들의 신원도 파악되어 있고 수사단서가 되는 물증들이 확보되어 있어 이번 사건은 그 규모에 비해 비교적 해결이 용이한 사건이다.
이같은 사건을 두고 경찰이 마치 범인들에게 놀아나는 듯 수사의 제자리걸음만 거듭하고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은 초동수사부터 잘못되었다. 사건발생 장소와 시체를 유기 했던 병원 등을 관할하는 경찰관서 등 이 서로 자기관할이 아니라고 수사에 늑장을 부리는 사이에 범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은신했다.
이 엄청난 사건이 서울시경에 보고된 시간이 사건발생 6시간이 지난 후였다고 하니 초동수사와 공조수사를 포함한 경찰의 기동성과 수사능력이 어떠한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경찰이 사진까지 공개, 지명 수배한 범인들이니 만큼 전국경찰의 공조수사체계만 옳게 잡혀 있었으면 범인은 더 이상 깊이 도망치지 못했을 것이다.
경찰이 평소 범죄꾼들의 동태를 꾸준히 감시하고 풍부한 정보만 가지고 있었던들 법인들이 모두 잡히지 않더라도 사건의 전모는 얼마든지 파악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찰은 수사체제의 재정비등에 과감히 발벗고 나서야 할 것이며 우선 나머지 범인들을 하루빨리 검거해 사건의 진상을 밝혀 국민의 불안감과 의혹을 덜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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