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기반이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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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제수지의 급속한 개선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동시에 주의와 경계를 요한다. 그리고 급속한 변화자체가 몰고 오는 부작용에도 대응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7월중 국제수지는 경상수지기준 4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 올 들어 흑자누계가 10억 달러 선을 넘어섰다.
우리 경제로서는 이례적인 이 거액의 흑자는 주로 6, 7월 두달 동안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이는 연초 이래의 이른바 3저 효과가 가속화된 결과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가장 큰 요인은 국제원유가 하락으로 원유수입부담이 크게 줄어든 점과 미국시장을 중심으로 한 수출의 꾸준한 신장이 아닌가 싶다.
정부는 지금의 추세를 근거로 올해 중 20억 달러 가까운 흑자를 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산술적으로 볼 때 그 같은 예상은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다. 우선 원유수인 부담의 경감만 해도 20억 달러를 충분히 넘어설 것이고 엔 강세와 달러하락에 따른 수출신장이 하반기에도 지속될 전망임에 비추어 연간 20억 달러의 국제수지 흑자는 예상 가능한 전망이다.
그러나 외채 5백억 달러의 우리가 국제수지를 생각할 때는 언제나 보수적이고 방어적 자세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이같은 국제수지 개선은 과대평가 되어서도 안되고 성급한 환상을 가져서도 안 된다. 우리의 국제수지 구조가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상반기 10억 달러의 흑자는 크게 자랑하거나 밖으로 내놓을 거리는 결코 아니다.
10억 달러 흑자는 대견하고 흐뭇한 일이나 5백억 달러 외채에 비하면 이제 시작에 불과하고 또 언제 흑자가 반전될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번 흑자의 주 원천이었던 국제유가 만해도 7월을 고비로 그 바닥시세를 지났다. OPEC의 감산 결정과 함께 적어도 3저 중의 하나는 사라질 전망이 거의 확실해 겼다.
연말까지 배럴 당 20달러선의 반등을 내다보는 전문기관의 예측으로 미루어 저 유가의 횡재는 거의 끝난 것으로 봐야 한다. 그 동안의 저 유가로 늘어난 석유·에너지소비의 고삐를 다시 최고 국제수지계획도 재점검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상반기 수출의 큰 몫을 차지한 미국시장은 38억 달러의 흑자를 내어 보호주의 압력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301조 협상의 일방적 양보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GSP(일반특혜관세 제)협상에서 강경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섬유협상의 결과로 섬유수출쿼터도 동결되고 올해 쿼터는 소급 축소되는 이중 삼중의 난관에 봉착해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엔고에도 불구하고 대일 무역역조는 상반기 중 33억 달러를 넘어서서 올해 국제수지의 중요한 누출구가 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이런 것들은 모두 10억 달러 흑자에 가려진 크나 큰 함정들이므로 하반기 수지대책의 점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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