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로 눈 돌리는 소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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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러시아의 세계전략을 놓고 오래 전부터 두개의 상반된 견해가 대립돼 왔다.
경계론을 펴는 사람들은 슬라브가 유럽과 아시아를 통제하는 하나의 제국을 형성, 세계를 제패하여 이른바「소련에 의한 세계평화」(Pax-Sovietika)를 건설하려는 대 야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낙관론자들은「칭기즈칸」,「나폴레옹」이래 어느 민족보다도 국가안보를 중요시하는 그들이 국경안전을 위해 주변국에 대해 통제력강화를 시도할 뿐 세계적 야망은 없다고 보고 있다.
이 논쟁은 아직 결론 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모스크바 동정은 소련이 세계제패를 위한 대 계획(grand design)하에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최근「고르바초프」는 소련의 극동센터라 할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 동부 시베리아 개발계획을 발표하고 아프가니스탄과 몽고에 주둔하는 소련군 일부를 철수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또 태평양 연안국 회의를 제창하고 태평양 경제협력체에 참여할 뜻을 표시했다. 특히 중공과의 지상군 감축협상 용의, 동아시아 핵무기감축 제의는 주목된다.
이「고르바초프」의 태평양 선언은 지금까지 구미중심으로 전개돼온 소련의 정책 초점이 아시아로 전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 2차 대전 이후 소련의 대외정책은 미국 일변도였다. 그러나 이것은「고르바초프」가 85년 여름「그로미코」외상을 해임함으로써 끝났다.
다음 단계의 소련 외교의 초점은 서구였다. 85년 3월에 집권한「고르바초프」의 최초의 서방국 방문지는 프랑스였다.
그후 「크락시」 이 수상과 만난 자리에서는 서구의 EC와 동구의 코메콘(동구상호원조기구)통합을 주장했다.「고르바초프」는 또 서독의 동방정책추진자인「브란트」전 수상과 장시간 회담, 동서유럽의 통합문제를 논의했다.
「대서양에서 우랄까지」를 내걸고 미국통제에서 벗어나 소련과의 관계를 개선한「드골」 을 포함하여 유럽통합은 많은 유럽지도자들의 이상이 돼왔다.
서구제국과의 관계를 한층 공고히 다져놓은「고르바초프」가 이제 본격적으로 아시아로 눈을 돌렸다.
그는 작년 5월「간디」인도 수상을 초청하여「브레즈네프」의 구상인 아시아 안보회의 개최를 다시 제의했다.
일본에 대해서는 북방 4개 도서 일부의 반환, 자신의 동경방문 의사를 비치고 일소 경제협력을 주장하는 등 양국의 관계확대에도 적극성을 보였다.
더 중요한 것은 중공과의 화해노력이다. 그는 취임 후 양국의 각료급 접촉을 빈번히 거듭하면서 등소평과의 회담을 제의하기도 했다.
중공은 대소화해의 조건으로 중소 국경주둔 소련군의 감축,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 철수, 캄보디아에서의 월남군 철수를 제시해 왔다.「고르바초프」의 블라디보스토크 발언은 그중 제3국 문제인 월남군 철수를 제외한 모두에 대한 긍정적 반응이다.
이래서 소련의 아시아 중시정책은 아시아 3대 주축국인 인도·일본·중공을 상대로 이미 본격화했다.
21세기는 아시아 태평양시대라는 말이 이제는 일반화 됐다. 아직 개발미완의 프론티어인 이 지역의 잠재력과 가능성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이미 태평양시대를 맞을 준비에 뛰어들었다. 이에 소련이 추가된 것이다.
역대의 어떤 크렘린 지도자보다도 개방적이고 경제건설을 중요시하는「고르바초프」의 노선은 군사적인 냉전 전략이라기 보다는 공존적인 화해전략이라는 인상이 짙다.
소련이 유럽과 아시아를 함께 장악하는 유라시아제국을 건설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북방대국 소련이 우리에게 접근해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세기전환기에 조선조가 겪은 대 러시아 경험과 2차대전후에 우리세대가 겪은 대소 경험을 바탕으로 새롭고도 적극적인 북방정책을 모색, 추진해야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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