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내가 만드는 첫 명함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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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마침내 나도 생전 처음 공식 직함 하나를 갖게 됐다. 한화미학(한국화투미술학회)의 초대 회장이 그것이다. 이젠 나도 남부럽지 않게 명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사람끼리 만나면 자동적으로 명함부터 교환한다. 그 다음에 나이.고향.학교 따지고 누구누구 아느냐 줄긋기부터 한판 해댄다. 이건 요지부동의 우리네 생활 패턴이다.

명함 교환 식순을 치를 때면 나는 언제나 난감해지곤 했다. 내 쪽에선 건네줄 명함이 없으니 나는 남의 명함만 받아 챙기고 시치미를 떼는 사람처럼 비춰지게 마련이다.

웬만한 사람들은 '아! 가수니까 명함이 없겠지'하고 넘어가는데 이따금씩 눈치없는 사람들은 "가수는 원래 명함이 없는 겁니까" 혹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도 명함이 있는데 대가수는 명함이 없어야 됩니까"라고 한다. 나도 농담반 진담반으로 "저도 그런 근사한 직함이 생기면 명함을 찍겠습니다"하며 위기를 넘기곤 한다.

실제로 나는 평생 가수 이외의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다. 명함에 새길 만한 직함을 못 가져봤다는 얘기다. 몇년 전부터 나한테는 '화가'라는 직함이 따라 붙기 시작했는데 그도 역시 명함에 새기기에는 썩 어울리는 직함이 아닌 듯했다.

이건 좀 다른 소리지만 노래하는 사람이 '가수'라면 그림 그리는 사람은 '화수'여야 한다. 반대로 그림 그리는 사람이 '화가'라면 노래 부르는 사람은 '가가'여야 한다. 그런데 뭐가 못 마땅한지 노래 부르는 사람은 '가수'로 낮추어 부르고 고상한 클래식을 불러야 '성악가'로 격상시켜 준다.

그리하여 나는 한때 명함에 어울리는 직함이 어디 없을까 하고 궁리를 해본 적이 있다. 그 결과 대략 두 가지로 요약됐다. 하나는 한국민속씨름협회 이사직과 다른 하나는 한국육상연맹 이사직이다.

둘 다 내가 열렬히 좋아하는 스포츠이고 내가 직접 찾아가 손을 비비며 애걸하면 그간의 내 명성 때문에 들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가장 손쉬운 건 서울 한강 변두리에 막걸리집 하나를 열고 '주점 화개장터 대표 조영남'하고 명함을 박으면 끝나는 일이다. 그런데 술 중독자로 말년을 마감할 것 같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가수.화가 이외에 딱 한번 다른 직함을 지녀본 적이 있긴 하다. '전푼협회장'이 그것이다. 전국에 내로라 하며 푼수를 떠는 인간들이 단체를 결성해 나를 초대 회장으로 옹립했는데 명함도 한장 못 만들고 푼수만 떨다 말았다.

이번에 창설된 약칭 한화미학은 다르다. 처음엔 권위를 살려 협의회 범위를 넓힐까 했는데 보다 아카데믹하게 가자고 해서 학회(school)로 정했다. 혼자서 학회나 학파 같은 단체를 설립할 수는 없다.

물론 나한테는 일당백의 든든한 동조자가 있었다. 지난 1년간 집중적으로 화투 그림을 그려 마침내 달포 전에 '나는 성인용이야'라는, 화투 그림이 있는 산문집을 낸 김점선 진짜 여류화백이 그다.

최근 우리는 첫 대면을 하는 자리에서 이미 의기가 투합됐다. 화투를 대변하자, 화투를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론 화투를 무시.비하하는 이중성을 타파하자, 우리네의 케케묵은 엄숙주의를 깨부수자.

그런 투쟁을 벌이기 위해선 공식 창구가 필요했다. 학번도 위고 훨씬 먼저 화투 그림을 그려 지난번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서 고가로 팔아넘기고 8월 중순부터 화투 그림으로 지방순회 전시를 열게 되는 내가 순전히 자천으로 회장에 올랐고, 김화백은 자연히 부회장에 올랐다.

별것 아니다. 그 유명한 인상파나 입체파도 이런 식으로 생겨났다.'한국화투미술학회 회장'이라는 직함이 박힌 나의 새로운 명함을 기대하시라.

조영남 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