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 작「지리산의 봄 1·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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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힘있는 좋은 젊은 시인들 중의 하나로 주목 받아온 고정희는 이제 더 이상 젊은 시인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가 1948년 생이며 1975년에 데뷔했으며 이제 다섯 권의 시집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지만, 무엇보다 이제 그의 시가 절제된 원숙함의 경지로 접어들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적 세계 인식으로부터 민중적 세계 인식으로 이행해가며 그 양자의 불일치로 갈등한, 그러면서 그 존재론적성격의 고통과 역사적 성격의 통의 혼재에 나름대로 부닥쳐감으로써 적지 않은 좋은 시편들을 써낸 고정희는 최근 2, 3년간 그 갈등의 극복을 위해 고통스런 작업을 수행해 왔다.
그 성과가 지난 4월에 간행된 그의 다섯 번째 시집 『눈물 꽃』이다. 그런데 이 시집의 시편들은 자유로움·활달함·힘·열정을 그 자체로 유감없이 보여 주는 한편, 그것들이 그에 상응하는 육체성을 얻지 못했음을, 그리하여 시인 자신의 표현을 빌면 <징그럽고 낯설고 불편>한 언어 이상이 되지 못했음을 숨기지 못하거나 혹은 숨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은 기독교적 구원을 자기 동일성의 근거로 삼는 한 젊은 시인이 <한 시대의 음습한 어둠을 바라보며 망가지>면서 그 어둠, 그 망가짐과 안간힘으로 싸우는 모습의 정직한 표출일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무척 감동적이다. 그 시편들을 쓰면서 그는 얼마나 고통스러웠던 것일까.
고정희의 신작 시 『지리산의 봄 1, 2』(『외국문학』여름호)는 그런 그의 절제된 원숙함의 경지에로의 진입을 감지케 하는데, 그것은 아마도그 몇 년 간 고통의 감당이 있었음으로 해서 가능해졌을 터이다.
『눈물 꽃』에서 중요한 이미지의 하나로 나타나는 눈물은 슬픔·쓸쓸함·탄식·좌절의 그것이되 끊임없이 <희망의 눈물>로 강변되었었다. 그것이 『지리산의 봄 2』에서는 자기 육체를 얻는다. 여기서 시인은 달빛 가득한 가운데 그리움·슬픔·눈물·고통·한의 상승을 보고 <산 이슬 털고 일어서는 바람>을 보며 이렇게 속삭인다. <때는 오월, 너 (바람-인용자)가는 곳마다 무성한 신록들 크게 울겠구나 뿌리 없는 것들 다 쓰러지겠구나.> 그 상승은 슬픔·쓸쓸함·탄식·좌절의 자기 수락과 더불은 자기 초월의 이미지며, 바람을 매개로 한 울음·쓰러짐은 다시 수락-초월을 예비하는 움직임의 보편적 형성이다. 강변은 지극한 바람의 소산인 것인데, 이처럼 시의 육체를 얻을 때 그것은 더 이상 강변이 아니라 시적 진실이 된다.
『지리산의 봄 1』은 <그대>와의 만남의 실현을 노래한다. 그 만남은 『눈물 꽃』에서는 이뤄지지 않으므로 안타까울 뿐인 바람의 형대로 나타났었다. 그 만남이 <나>가 <빛>으로 현현한 <그대>에 일치되어 감으로써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보기 드물게 아름답고 힘차게 묘사되고 있다.
이 두 시편에서 얻어진 시의 육체성은 두 가지 세계 인식의 갈등을 진정으로 극복해 가는 움직임 속에서 낳아지는 것일까. 그것이 초기의 기독교적 세계 인식으로의 단순한 복귀가 아닐 것임은 분명하다 (엄격한 의미에서의 복귀는 불가능한 것이므로).
어떻든 이 두 시편은 고정희의 변모의 단초다. 그것에서 나는 절제된 원숙함으로의 진입을 감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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