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환 환자의 심리|조두영<서울대 의대 정신과 교수>(614)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교통사고가 나서 몸을 다친 사람, 감기려니 하다가 심한 고열에 숨이 가빠진 급성 폐렴환자 같은 급환·급상 환자들의 경우는 만성병 환자와는 그 심리상태가 다소 다르다.
느닷없이 몸이 고장난 사람들은 상태가 중하면 중할수록 망연자실해 어쩔 줄 몰라하며, 따라서 전적으로 남에게 의지하려 한다. 특히 치료해주는 의사에게 향한 의존심이 매우 높고, 스트레스를 당해내지 못해 심리적으로 퇴행을 일으켜 어린 시절의 언행을 스스럼없이 드러낸다.
그래서 호랑이로 소문난 훈육주임 선생님, 교도소행도 겁내지 않는다는 사자후의 정객, 인사를 해도 받지 않기로 유명한 병원 원장님까지도 자신들이 이런 환자의 신세가 되면 의사는 고사하고 간호원만 보고도 침대에서 웃음을 보낸다. 즉 이들 급성환자는 고통과 불편을 과장하기도 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의료진에게 유혹적인 태도로 나온다.
그러다가 기대한 자상한 치료를 받지 못한다고 여기면 이들은 벌컥 화를 내거나 심하면 피해 의식에 사로잡힌다. 이들은 분한 마음을 평소와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예컨대 약이나 밥을 안 먹는 심술을 부리는 것이 그것이다.
의사는 이런 환자일수록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할까 하고 침착하게 생각해서 대처해야 되겠지만 의사 역시 사람인지라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즉 환자와 인간적 차원에서 너무 공감을 하다보면 의사 또한 불안해지기 때문에 환자라는 인간보다는 그 「병」 자체에 몰두함으로써 자신의 불안을 막으려 한다. 그러니 환자는 더욱 외롭다. 따라서 의사는 적당한 선까지만 환자와 공감할 것이며, 또 환자와 협조가 잘 되는 정도까지는 환자의 퇴행을 막지 말고 오히려 조장하는 편이 좋다.
환자는 상태가 중하면 중할수록 자기가 그런 상황에 있음을 부정하는 현상을 보인다. 출혈이 심한데 애써 태연한 태도를 보이려 하는 것은 그가 용감해서가 아니다. 실은 그 자신이 이런 현실적 고통을 적절히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차라리 그런 현실에 눈감아버리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그에게 『생명이 경각에 있는 것도 모르고, 당신 왜 바보같이 구시요.』라는 식으로 실상을 알려준다면 때론 아우성을 치고 흥분해서 발광에 이르기까지 하는 악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그냥 계속 부정을 하도록 놓아둠이 좋다. 상황을 숨겨야 치료에 협조를 잘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