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만 몰리고 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난 상반기에는 몇 가지의 좋은 여건 때문에 우리의 수출이 괄목할만한 활기를 보였고 사상 초유의 경상수지 흑자를 내다볼 만큼 분위기가 들떠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수출이 늘면 늘수록 바깥의 사정은 더욱 어려워지고 예상되었거나 예상되지 않았던 갖가지 장애들이 사방에서 돌출하게 마련이다. 이런 장애들은 일시적인 수출 호황에 자족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
작금 워싱턴과 밴쿠버에서 들려온 두 개의 무역회담 소식도 이 같은 장애의 구체적 사례들이다.
그 하나는 우리의 최대 관심사인 한미섬유 회담으로 양국의 쌍무협정을 개정하자는 회담이며, 또 하나는 자동차 수입을 규제하겠다는 캐나다와의 회담이다.
이미 두 차례의 실무접촉을 가졌어도 섬유회담이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억지 때문이다. 이 회담의 억지성은 아직도 양국간 섬유협정이 1년 반이나 시효를 남기고 있는 점에서 쉽게 찾아진다.
기존의 쌍무 협정을 파기하고 향후 3년간 섬유수입량을 동결하자는 미국의 주장은 이미 그 억지와 부당성에도 불구하고 주 협상 의제로 기정사실화 되어왔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이같은 의제의 기정사실화가 자칫하면 협상결과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아진 점이다. 물론 우리도 미국의 이런 억지가 우리와 상황이 유사한 홍콩·대만에서 이미 인정된 바를 모르지 않는다.
한미섬유무역을 이들 3국과 동렬에서 놓고 볼 때 우리의 협상한계가 자명해질 것은 짐작이 어렵지 않다. 그러나 현재 한미무역에서 제기되고 있는 모든 현안들의 성격으로 볼 때 우리에 대한 미국의 무역압력은 너무도 조직적이며 포괄적이고, 일방적인 것이어서 대만·홍콩 등 유사 개도국들과 비교되기 어려운 측면이 너무 많다.
이들 개도국들의 문제는 대미 수출규제가 주안점인데 비해 우리에게는 일방으로 수출을 막고 타방으로는 국내시장 개방과 지적소유권 보호를 동시에 요구하는 양면공세를 펴고 있다. 이것은 그들의 무역압력이 일반 원칙 아닌 일방적·자의적 원칙의 강요일 뿐이다. 대미무역불균형이 훨씬 더 심각한 일본·대만을 젖혀두고 왜 우리만 동시다발의 전면 공세에 몰려야 하는지를 납득하지 못한 채 우리 정부는 미국의 페이스에 계속 휩쓸려 다니고 있다.
농산물을 포함한 능력을 넘는 상품시장 개방도 허락했고 보험·금융서비스 시장도 개방이 허용됐으며 물질특허와 저작권보호를 포함한 이른바 지적소유권도 국내 업계의 치열한 반대를 무릅쓰고 일괄 타결이 임박해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수출은 보장받기는커녕 오히려 우리의 사활이 걸린 섬유수출은 동결 당하고 겨우 새 활로를 찾으려는 자동차는 새 규제에 직면하고 있다. 그뿐인가, 신발류를 포함한 이른바 일괄 통상 규제법안조차 위협의 수단으로 유보되어 있다.
이렇게 볼 때 한미무역은 이제 서로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고 우리로서도 결연의 원칙과 입장을 천명하고 협상의 자세를 일신해야 할 때가 되었다. 언제까지나 미국주문대로 끌려 다니며 그것도 줄 것 다 주고 우리 것은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대미무역은 전면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