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의 데이비드 캐머런, 정계에서도 은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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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캐머런. [중앙포토]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를 주도한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가 12일 하원의원직에서 물러났다. 50세 나이에 정계에서 은퇴한 게다.

그는 자신의 선거구인 옥스포드셔의 위트니에서 “전 총리로서 적절한 백 벤처(내각이나 그림자 내각에 참여하지 않는 의원)로 역할을 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았다”며 “지난 여름 동안 숙고했고, 의원직을 사퇴하는 게 옳은 일이라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테리사 메이 정부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다”는 말도 했다.

캐머런의 중도 하차로 총리가 됐지만 메이 총리는 사실상 새 정부인 것처럼 행보했었다. 캐머런의 사람들을 내각에서 몰아냈고 캐머런의 정책들을 백지화하곤 했다. 선거 공약에 없던 공립 중등학교(그래머 스쿨)를 늘리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캐머런이 메이에 실망해서 떠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결과적으로 메이로선 더 ‘새 정부’로 보이게 됐다. 캐머런 자신은 “메이가 멋지게 총리직을 시작했다”고만 했다.

그는 부유한 중산층 출신으로 명문 이튼 칼리지와 옥스퍼드대를 거쳐 35세에 처음으로 의원배지를 달았다. 4년 만인 2005년 야당이던 보수당 당수가 됐고 2010년 자민당과의 연정 하에 총리의 자리에 올랐다. 1812년 이후 최연소 총리였다. 2015년 총선에서 ‘집권한 정당은 의석을 잃는다’는 통념과 달리 단독 과반이란 승리를 이끌어냈다. 2020년까지 집권이 따 놓은 당상처럼 보였으나 공약으로 내걸었던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하기로 하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영국의 EU 잔류를 위해 뛰었으나 국민 다수는 브렉시트를 선택했다. 직후 총리직에서 물러났고 이번엔 의원직까지 내놓은 것이다. 그는 “결과적으로 영국의 EU 탈퇴를 이끌었다는 것으로 평가받을 것”이란 견해에 대해 “국민투표까지 안 하게 될 것이라고 여겼지만 약속을 지켰다”고 했다. 장차 거취를 두곤 “웨스트민스터(영국 정치권 지칭) 밖에서의 삶을 꾸리겠다”며 “아직 딱히 정해진 건 없지만 공적인 기여를 하고 싶다”고 했다. 대학 졸업 직후 보수당 소속 연구원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던 그로선 28년 만에 정계에서 떠나는 셈이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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