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에』·『제비』 확실한 유기성으로 생명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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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내 어린 제자 나송군외 시조들은 대개 발상에서 표현에 이르기까지 시류에 민감한 결함 외에도 매편이 유기성의 결여를 드러내고 있는 점이 큰 흠의 하나로 지적된다. 단수의 경우에는 장과 장 사이에, 연수의 경우에는 수와 수끼리의 유기성 결여로 말미암아 생명체로서의 기본 요건이 결핍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들(장과 장, 수와 수)은 제각기 동떨어진 몸놀림을 일삼고 있어서 ,마치 각 부분을 따로 만들어 하나로 묶어놓은 인형과 같은 느낌을 자아내게까지 하는 것이다.
한말로 모자이크해 놓은 듯한 느낌을 강하게 끼치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내가 불쑥 물었다.
『자네는 자신이 쓴 작품들을 욀수 있는가?』
더듬는 시늉으로 그가 대꾸했다. 『어떤 건 겨우 외지만, 어떤 건 잘 못됩니다. 원체 기억력이 나빠서요.』
『이 사람아, 그게 어찌 기억력의 문제인가. 자기가 쓴 시를, 그나마도 길지 않은 시조를 그래 줄줄이 외지 못한단 말인가』
『앞으로 욀수 있도록 노력하겠읍니다.』
『욀수 있도록 노력할 일이 아니야. 절로 외어지도록 해야지. 그러자면 시상을 얻은 때로부터 종이에 옮기기까지 머리 속에서 완전히 익히도록하게나. 무릇 시(시조)도 한 생명체인 것이야. 모태에서 일정한 형성과정을 거쳐 낳아지는 다른 여느 생명처럼 시도 작자의 머리 속에서 충분한 성숙과정을 밟아 옹근채 낳아져야만 제격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게.』
여러분의 경우는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작품을 통해 헤아리건대, 나송군의 경우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심증을 굳히는 터다.
『석양에』와 『제비』는 비교적 확실한 유기성에 힘입음으로써 생명감 있는 태깔을 띠고 있다.
『수를 놓고』는 시성(포에지)이 배어있기는 하지만 유기체로서의 혈액순환이 원만하다고는 볼수 없으며, 『잠 잃은 밤』은 비록 즉물적이고 진부하기는 하나 생명체로서 한결 옹근 모습을 갖추어 있다. <박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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