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감각 돋보인 환상의 무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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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6년동안 무용계에 몸담고있는 필자는 레닌그라드의 키로프발레, 로열발레의 신작, 「모리스·베자르」의 발레, 「마더·그레이엄」무용단의 신작등 수없이 많은 멋진 무용들을 직접 현지에서 보고 부러워했다.
그러나 1일밤(6일까지)서울의 예술극장 미리내에서 본 ㄹ무용단의 창작무용극무대는 이들 세계 정상급무용단에 못지 않은, 아니 어느면으로는 그 이상의 감명과 흥분을 주었다.
물론 1일밤 공연된 두작품, 오은희의 춤 『대화』 및 황희연의 춤 『이땅에 들꽃으로 살아』는 이미 각각 84년11월과 85년5월에 초연한것이다.
당시는 각각 1시간20분 길이의 작품이었는데 이것을 45분으로 깎고 다듬은것을 처음 보게된것은 필자의 행운이었다.
우선 45분이라는 짧지않은 시간을 지리하지 않게 계속 숨막히는 흥분과 감명, 궁금증으로 이끌어 간 이 공연은 진정한 여름밤의 향연이었다.
군무 『대화』는 얼핏 「마더·그레이엄」의 무용극 『아파치아의 봄』을 연상시컸고, 오은희의 마지막 춤장면은 역시 「마더」의 불후의 명작 『라멘테이션』을 연상시키는 시적인 춤들이었다.
그러나 르무용단의 『대화』는 뚜렷하고 독창적인 한국창작무용으로 우연히 「마더」의 명작들을 연상시키는 그런경지에 이르른것이 치하할만한 사실이다. 발에 밟히도록 흔해빠진 소위 학교무용, 학교 가야금처럼 재미없고 시시한 경지를 탈피한 ㄹ무용단 단원 전체의 팀웍은 정말 한국에서는 보기드문 직업적인 세련미를 가졌다.
이번 작품에서의 안무자 배정혜의 치밀하고 조직적인 안무의 언어실력은 대단하였고 13인의 무용수 실력이 똑같이 닦여져 있는것도 치하할 일이다.
한가지 아쉬움은 『대화』의 의상을 횐색·회색·쥐색등으로 처음·중간·마지막으로 바꾸어 입는다면 그 종교적이기만한 횐색 일색에서 좀더 드러매틱하고 아름답고 즐거운 춤이 되지않았을까 하는것이다.<무용평론가·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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