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내각제」로 가는 민정항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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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구구한 억측 속에 갖가지 추측만 무성했던 민정당의 개헌안 기본골격이 마침내 표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앞으로 지역별 개헌간담회라는 여론수집과정과 당론화의 절차 등을 거쳐야겠지만 이미 기본골조는 순수한 의원내각제로 굳혀있는 상태다.
그리고 그것도 이미 오래 전 여권 고위선에서 합의됐었던 「내부구상」이 여권내부의 의견통합과정이라는 우회적인 긴 통로를 거쳐 나타났을 뿐이다.
헌법에 관한 민정당의 입장이 연초까지의 호헌에서 개헌으로 급전한 계기가 된 것은 전두환 대통령의 유럽순방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영국·서독의 헌정제도를 둘러보고 피력된 소신이 4·30청와대회담에서 개헌용의라는 입장변화로 나타났었고 개헌의 방향도 구주헌정체제에 대한 소감의 형식으로 흘러 나왔었다.
정치의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서구형 의원내각제가 좋겠다는 것이었고 이러한 구상은 지난 5월 중순 노태우 민정당대표위원이 청와대에 올라가 단독요담을 나눴을 때 여권의 기본방향으로 굳어졌었던 것 같다.
이 무렵부터 민정당내에서는 △「권력의 분산」이니 △의회와 정당의 활성화 같은 「내각책임제적」인 개헌방침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여권내부에서는 개헌에 관한 잡다한 견해들이 흘러 나왔고 심지어 이로 인해 여권내부에 오해와 갈등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었다. 이 같은 사실을 두고 몇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첫째는 여론의 수렴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진정한 민주화를 위해서는 의원내각제밖에 다른 대안이 없겠다는 방향이었지만 그것이 위에서 일방적인 가이드 라인으로 시달되기보다는 광범한 여론수렴을 통해 밑으로부터 제안되는 형식이 바람직하다고 봤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권내의 핵심적인 지지집단에 대해 신중한 설득작업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은 외부의 추측과는 달리 상당히 손쉽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냈다는 것이다.
또 이 여론조정과정에서 노 대표도 상당한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여권 내에서의 위치를 분명히 했었다고 한다.
둘째는 여권 내에 개헌에 관한 깊은 이견이 마찰을 일으켰다고 보는 견해다. 그동안 습성화 되다시피 한 헌정경험 때문에 대통령중심제에 대한 선호가 예상외로 강력하게 대두했던 것은 사실이다.
민정당의원 중에는 대통령중심제 불가피를 공공연히 주장한 사람도 있었고, 간선제에 의한 대통령중심제였던 제헌국회헌법에 높은 평가를 주는 의견도 있었다.
이 같은 「변형」된 간선제 선호의견이 널리 유포되자 이로 인해 순수내각책임제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내부적인 결속을 꾀하는 등 한때 여당으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움직임이 나오기까지 했었다. 조기상 의원이 국회대정부 질문에서 당 지도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내각책임제를 공개적으로 질문해 파문을 일으킨 것도 이와 관련된 것이었다.
민정당이 개헌에 관한 여러 가지 의견을 내놓은 또 한 가지 이유는 대야관계를 고려한 것이라는 풀이도 있다. 신민당을 임시국회로 유도하고 헌법특위설치의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직선대통령제를 주장하는 야당 측에 그 반대되는 의원내각제를 미리부터 내보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야당과 여론으로부터 개헌내용을 밝히라는 재촉을 받으면서도 『직선제반대』라고 변죽만 울릴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민정당 측의 개헌전략은 실제 갈팡질팡한 구석이 있었고 한때는 진짜 구상을 마지막 카드로 남기고 대통령간선제 등 절충형 개헌안을 대야협상용으로 제시하자는 등 별별 수단이 강구되기도 했다.
이처럼 구구한 해석들이 시사하는 것처럼 여러 가지 복합적 요인이 민정당의 개헌입장에 작용했으리라고 짐작되는 것이다.
민정당이 결국 택하게 될 의원내각제를 보면 △외교·안보·정치·경제 등 모든 권한을 수상과 내각에 부여하고 △따라서 국회에서 선출되는 대통령은 상징적 존재에 그치며 △사법권의 독립, 의회의 활성화 등 국가권력을 실질적으로 분산하는 「순수한」제도라는 것이다.
민정당 측이 구상하는 이 내각제는 영국식 의회제도를 그대로 따온 것이며 서독·일본 등의 방식과도 비슷한 「수상중심제적」 의원내각제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수상 중심제는 일반적으로 정정이 불안정한 것으로 생각되기 쉬운 5공화국 이전의 프랑스식 내각책임제와는 달리 정권의 안정을 확실히 보장할 수 있는 제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민정당 측이 이 같은 순수의원내각제에 대해 앞으로의 경제·사회발전 등에 맞는 정치의 발전을 이룩하려면 그 밖의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있다.
선진국 가운데 미국을 제외하고는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는 나라가 없을 뿐 아니라 그동안의 사회·경제적 성장으로 볼륨이 커지고 다양화한 우리 사회의 정치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도 권력 집중적인 대통령제에서 벗어나 한 단계 높은 정치 체제로 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자치제의 실시도 이 같은 「진정한 민주화」를 이뤄나간다는 같은 맥락 위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민정당 측은 대통령직선제를 택할 경우 승산이 없기 때문이라는 일부 시각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의원내각제가 야당의 주장에 대응수단으로 강구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강조하고있다.
그러나 「순수한」의원내각제를 택하는 게 민정당의 협상위치를 강화해주고, 그것이 나아가서 타협의 통로에 이르는 단서의 구실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야당 측이 비록 심정적이긴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국민에게 폭넓은 소구력이 있는 직선제를 밀고 있는데 대해서 민정당 측이 어중간한 절충형 개헌안을 내놓았다간 비난만 온통 뒤집어쓰게 될 게 뻔하다.
따라서 민정당이 야당의 주장에 당당하게 맞서고 야당 측에 타협여건을 조성해 주려고 한다면 어느 제도이건 최소한 논리적으로 하자가 없는 대안을 내놔야한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또 야당의원 가운데 의원내각제 지지파가 상당수 있다는 현실적 요인도 배제할 수 없는 일이다.
때문에 민정당이 일단 순수의원내각제로 나가려는 이상 협상의 발판은 상당히 튼튼하게 구축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민정당 측이 이 개헌안을 어떻게 관철시켜 나갈지, 또 야당과의 협상과정에서 어떠한 「변형」으로 타협이 될지는 미리 점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만 의원내각제에서는 각 정당이나 정파가 자기 몫만큼의 힘을 행사할 것이기 때문에 장외세력의 정치권수용이 덜 부담스러워질 수도 있고 또 현재 협상에 임하는 기존정치세력의 기득권이 어느 정도 유지될 수 있다는 점에서 타협을 위한 공간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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