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있는한 밝히리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거 왜「불켜진 그거」있지않소. 그거 쓴 기자좀 바꿔주시오.』
『오늘「촛대」참 좋습니다. 아주 속이 시원하게 썼어요. 앞으로도 계속 좀 잘 써주슈.』 『낮에 시내서 본 신문에있던「촛불」이 집에 와서 배달판을 보니까 빠졌네요. 어떻게 된 겁니까.』
꼭1년.
환하게 주변을 밝히는 한자루「촛불」그림의 작은 고정란이 중앙일보지면의 한귀퉁이에 등장한지 3일로 한돌이 됐다.
제목조차 써넣지 않아 독자들은 아직도「촛대」,「불켜진 그거」라고도 부르고 있는 원고지 4장짜리, 엽서 한장크기 고정란. 그러나 뜻밖에도 그 크기로는 감당못할만큼 큰 독자들의 반향에 힘을 얻어 심지를 돋워 불을 밝힌다.
『이제 고아원엔 가기 싫어요』전과11범 아버지가 다시 절도죄를 저지르고 구속되는 바람에 혼자 남게된 12살짜리 꼬마의 가슴아픈 사연을 시발로 1년동안 80여회.
일선 사건기자들이 취재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뉴스뒤의 뉴스가 기록됐다.
미문화원사건 법정에서 아무도 증언하려하지 않는 유인물내용의 용공성여부에 대해 용기있게『아니』라고 증언을 했던 유영준교수(인하대) 는나중 9천7백여통의「팬레터」를 받았다고 그 촛불을 썼던 기자에게 알려왔다.
법정에서『당신은 이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 한 여대생의 최후진술이 있던 날 어느 사장님은 작은 네모 지면을 복사해 모든 사원들에 읽혔노라고 격려의 전화를 보내오기도 했다.『신문이 오면 그 난부터 본다』며.
학원에서, 시장에서, 법정에서 젊은 기자들의 눈에 비친 지난1년의 우리사회는 갈등과 혼돈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 극복과 성장의 활력이 분출하는 모습이기도 했다.
어둠이 있는한 촛불은 몸을 살라야 한다. 몸을 태워 어둠을 밝히는 한자루 작은촛불. 바람이 불면 꺼질듯 더욱 밝게 일렁이는 춧불을 다짐한다. <임수홍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