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뭘 압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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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니 왜 못 들어가게 막는 겁니까』
『상부의 지시라 어쩔 수 없습니다』
『도대체 출입제한의 근거가 뭡니까』
『제가 뭘 알겠습니까. 전 그저 시키는대로 할 뿐입니다』
『언제까지 막으랍디까』
『잘 모르겠습니다. 제 입장을 봐 주십시오』
25일 상오8시45분쯤 서울지검 공안부·특수부가 있는 검찰청 5층 입구.
연3일째 출입문제를 두고 보도진들과 경비근무자간에 입씨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근거를 대라』는 항의에 『상부의 지시』라고만 되뇔 뿐 아무런 납득할 만한 이유도, 설명도 없었다.
『제가 뭘 알겠습니까』라며 어쩔 줄 몰라하는 애꿎은 근무자만을 다그치기가 딱해서 기자들은 결국 돌아섰다.
5층의 통제가 계속되는 가운데 서울지검 고위관계자와 기자들이 만났다.
관계자는 『감사를 앞두고 직원들 보안교육을 위해 취해진 조치』라고만 말할 뿐이었다.
그러나 보도진들은 이같은 조치가 사실은 며칠전에 있었던 구속자 석방문제 보도에 대한 검찰측의 「불편한 심경」이 드러난 것일 거라는 추측에 의견을 모았다.
보도가 나간뒤 고위관계자가 국회에서 『발설자를 찾아 문책하겠다』고 발끈하는 반응을 보였기에 이 추측은 『오해』라는 관계자의 해명에도 불구, 보도진들에게는 더 설득력이 있었다.
다른 어느 기관보다 공권력의 집행과정이 밖에서 들여다보이는 특징탓에 「유리창속의 권력기관」이란 애칭(?)을 듣는 검찰. 그 검찰이 유리창에 커튼을 고집하는 심저는 어떤 것일까.
국민들은 검찰에 기본권 침해에 제동을 걸어주는 준사법기관으로서의 권위를 부여하고 검찰의 결정에 승복코자 하며 검찰에 신뢰의 몸짓을 보내고 있다.
검찰이 「힘」과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투명한 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어느 법조계인사의 설명에 공감을 느끼며 자제력을 되찾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다. <김용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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