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품종·성·나이 '파괴상품'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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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성동에 사는 주부 김경희(43)씨는 최근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에서 여성 의류 브랜드인 '아이잗바바'의 옷을 구입했다. 아이잗바바는 원래 20대 미혼 여성을 겨냥한 제품이다. 하지만 최근 이 회사의 옷은 40대 주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아이잗바바 디자인실 김미정 팀장은 "구매력이 줄어든 20대에 비해 경제적 여유가 있는 30, 40대가 영 캐주얼 브랜드 매장을 찾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젊어 보이고 싶어하는 이 같은 다운 에이징(down aging) 소비 성향에 맞춰 디자인은 그대로 두고 사이즈만을 변형시킨 제품들을 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잗바바는 디자인은 20대용이지만 주부들도 입을 수 있는 대형 사이즈의 옷을 전략상품으로 내놓고 있다.

아동.청소년 의류인 '폴로보이즈'도 최근 주고객층을 20대 여성으로 바꿨다. 성인 옷과 디자인이 비슷하면서 사이즈가 넉넉하고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구매 비율은 매출의 80%를 넘어섰다.

연령.성(性).품종.계절 등을 무시하는 상품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장기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틈새시장을 노린 기업들의 새로운 마케팅 전략이 효과를 얻고 있는 것이다.

◆틈새시장 노린 '파괴 상품들'=농산물 코너에서도 품종 파괴 상품이 효자상품으로 등장했다. 최근 선보인 노블.슬림.초롱 토마토 등으로 구성된 '토마토 3형제'가 대표적이다.

전남 화순에 있는 '한국 온실 작물연구소'가 개발한 토마토 3형제는 기존의 토마토에 비해 당도가 높고 저장기간도 길어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밖에 상추와 배추를 결합해 만든 쌈추도 아삭아삭하면서 단맛이 강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여성의 전유물이었던 핸드백 업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닥스.해지스.워모 등은 여성용 핸드백과 거의 흡사한 남성용 숄더백을 내놓고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반면 여성들의 사회 진출 증가로 여성용 서류가방도 대거 선보이고 있다. 루이까또즈의 '브리프케이스'도 그 중 하나다.

◆소비자가 시장 변화 이끌어=남성용 화장품의 경우 남성들의 달라진 욕구를 잘 포착해 재미를 보고 있다. 남성들의 피부와 몸매를 관리해 주는 화장품인 랩시리즈의 경우 지난해에 비해 판매량이 25% 이상 늘었다. 외모에 부쩍 관심을 갖는 남성들을 겨냥한 틈새상품이다.

과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원가가 제철보다 두배 정도 많이 들지만, 수익성은 제철 상품 이상이다. 돈이 좀 들더라도 계절에 관계없이 먹고 싶은 과일을 먹겠다는 쪽으로 소비 패턴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지난해 월드컵 이후 트레이닝복이 외출복으로 젊은층에게 큰 인기를 얻었던 것도 파괴 마케팅의 일종"이라며 "불황이 깊어질수록 업체들의 틈새시장 공략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익재 기자

<사진설명>
한 백화점 판매원이 최근 인기가 높은 노블.슬림.초롱 등 '토마토 3형제'를 들고 있다. 이 토마토들은 기존 토마토를 개량한 것으로 다양한 색상과 모양을 갖고 있다. [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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