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상 한은총재가 밝힌 통화정책-"선거 때문에 돈 푸는 것 아닙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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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정부와 한은은 올해 총통화 증가 목표를 연초의 12∼14%에서 16∼18%로 대폭 높였다.
돈이 많이 풀리면 결국 물가가 뒤고 투기가 이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했던 터라 이같은 정책선회가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소리가 많다.
박성상 한은총재를 만나 저간의 사정과 앞으로의 대응방향을 들어본다.
-최근에 총통화 증가목표를 크게 높인데 대해 왈가왈부가 많습니다. 더우기 지난4월만 해도 여러 공식적인 모임에서 박 총재 스스로 12∼14%선 고수를 수차례 밝힌 바 있어 목표수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저 자신도 4월까지는 14%선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3∼4월중에 보여준 수출을 중심으로 한 고도성장이 얼마나 계속될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한 정부당국의 전망도 지금처럼 밝은 것은 아니었고 또 솔직이 말해 일단 정해놓은 통화목표를 중앙은행총재가 먼저 고치자고 나설 수야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새로 고친 16∼18% 목표라는 것도 상황변화에 따라서는 또 바뀔 수 있는 여가 있는 것입니까.
▲정부의 각 경제부처와 한은이 각종 여건을 고려한 후 충분한 협의를 거쳐 설정한 것이니 만큼 이번만큼은 반드시 지킬 생각입니다. 한은으로서는 일단 17%를 기준으로 해서 여건변화에 따라 상하 1% 이내에서 대응해 나갈 계획입니다.
-새로 책정된 16∼18%의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먼저 기본전제로 수입을 유발한다거나 물가를 자극시키는 통화증발은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현재 경기의 회복세, 특히 수출쪽의 호조로 볼 때 올해 경제는 무난히 9%정도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입니다. 당초의 통화증가목표 12∼14%가 경제성장률을 약 7%정도로 잡았기 때문에 여기서 2%정도 증가요인이 생겼습니다.
또 통화의 유통속도가 다소 떨어졌고 올들어 선수표 발행금지로 지금까지 통계에 잡히지 않던 부분이 노출되면서 숫자상 증가요인이 생긴 점도 감안됐습니다.
결국 16∼18%도 이미 나타난 불가피한 통화증가요인을 현실화시킨 것이지 경기를 앞장서서 자극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실물증가가 뒷받침되는 것이기 때문에 물가불안 같은 우려는 안해도 된다고 봅니다.
-일부에서는 통화공급을 늘리는 것이 개헌 및 지자제 실시 등으로 예상되는 선거에 대비한다는 데도 숨은 목적이 있지 않느냐는 얘기도 있는데요.
▲한마디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선거철에 일시적으로 돈이 다소 느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총통화 규모가 30조원이나 되는데 설령 1천억∼2천억원이 더 풀린다해도 그 영향은 극히 미미합니다.
실제 총선이 있던 지난해 2월 만해도 총통화 증가율은 9·1%에 그치지 않았습니까.
-돈이 풀리는 규모자체 뿐 아니라 공급방식이라든지 도대체 풀려 나간 돈이 쓰일데 제대로 쓰이고 있느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단순히 한 면만을 숫자로 보면 통화공급이 다달이 「춤을 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사실 내용을 뜯어보면 그런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예컨대 4월중에는 총통화가 전달보다 줄었다가 5월중에는 1조원이 넘는 돈이 나가고 한 것은 사실이지만 4월에는 부가세 징수라는 계절적으로 불가피한 요인이 있었고 또 그렇게 죽어라고 쥐어짜도 4월중 총통화 증가율이 16%이상 늘었는데 만약 자금수요가 있는 대로 돈을 풀었다면 아마도 큰 비난이 있었을 겁니다. 5월중에 1조원이상 나갔다해도 M2증가율은 17·2% 아닙니까. 어느 쪽에서 보느냐하는 얘기지만 지금까지의 통화정책에 큰 무리가 있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최근 국제수지 흑자기조 하에서의 통화관리가 중요하다는 점을 누차 강조하시는데 특별한 구상이 있으십니까.
▲올해 경상수지는 약5억 달러 혹자를 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지 않습니까. 작년의 경우 1조원 이상의 통화환수요인으로 작용하던 해외부문이 이제는 5천억원 정도의 공급요인으로 뒤바뀐 셈이지요.
이 같은 흑자는 외채를 줄이는데 최우선적으로 사용돼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 돈이 77∼78년처럼 국내로 들어와 원화로 바뀌어져 투기로 연결되는 식의 일은 있어서는 안됩니다.
우선은 기업들의 자금사정이 그다지 좋지 않아 수출로 번 돈을 원화로 바꿔 쓰고 있습니다만 앞으로 이는 외채를 갚고, 또는 해외투자로 돌리는 식으로 빨리 전환돼야 하겠지요. 물론 한은으로서는 해외부문에서 일단 국내로 유입된 돈을 통안증권이나 재정증권 발행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묶어나갈 생각입니다.
-요즘 기업의 얘기를 들어보면 수출기업은 각종 정책금융을 이용할 수 있어 큰 문제가 없지만 내수기업은 상당한 곤경을 겪고있는 느낌입니다.
▲내수기업이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올해 수출증가율을 20% 수준으로 잡는다면 수출의 성장 기여율로 볼 때 이것만으로 약 7%의 성장효과가 생깁니다.
솔직이 말해 내수부문까지 동시에 성장을 추구할 때는 안정을 무너뜨릴 우려가 큽니다. 일단 수출을 뒷받침함으로써 이 부문의 고용증대·소득증대가 소비지출의 증가로 이어져 자연스럽게 내수부문으로 침투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또 하나 부실기업정리과정에 들어가는 돈이 많아 다른 부문에 주름살이 간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찌 보십니까.
▲물론 그런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만 이미 부득이한 일로 인정된 것 아니겠습니까.
한마디로 말해 외국에서 돈 좀 벌려다 잘 안된 노릇인데 그로 인해 국민경제에 미칠 나쁜 영향을 최소화시켜 나가는 게 중요하겠지요. <박태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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