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정치」의 존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국회헌법특위구성결의안이 노태우 민정당대표와 이민우 신민당총재간의 합의에 따라 24일 국회본회의에서 통과된다. 물론 헌특 구성이 원만한 합의개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까지 이른 과정의 우여곡절이나 진통 못지 않게 험난한 도정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첫번째 고비는 무난히 넘긴 셈이 된다. 헌특 구성이 국민여망이라는 점에서 이번 여야합의는 값진 것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일단 헌특 구성의 원칙은 합의되었다지만 당장 구성비율에서 활동시한 및 운영방식에 이르기까지 풀어야 할 과제는 만만치 않다. 야당쪽에서 헌특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던 구속자 석방문제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 또한 배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노·이 회담에서 이 총재는 수배중인 사람에 대한 수배령 해제, 조사중인 사람의 불기소, 재판중인 사람의 공소취하, 형 확정으로 복역중인 사람의 사면복권 등 구속자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김대중씨 등에 대한 사면·복권도 요구한 반면 노 대표는 분명한 언약을 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야당요구는 일견 전원 즉각 석방이란 선행조건에서 후퇴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으나 법적 절차를 무시할 수 없다는 「양해」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민정당으로서도 구속자 문제는 벗어야할 부담일 뿐 아니라 신민당 내 협상론자들의 입장을 강화시켜 준다는 점에서도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매듭을 짓는 성의를 보여야할 것이다.
현재로서 개헌은 여야간에 누구도 이의가 없는 대원칙이 되었다.
헌특 구성에 대한 합의로 그같은 대원칙은 거듭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의 일은 기정방침을 지체없이 밀고 나가 연내개헌을 성취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구속자 문제가 중요하고 반드시 물어야할 과제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것이 개헌추진을 저해해서는 안된다. 작은 일에 매달리다 큰 일을 그르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헌특이 구성되는 이상 합의개헌을 도출해 내기 위해서는 방만한 헌법논의의 폭을 좁혀 구체화하는 일이 시급하다. 신민당을 비롯해서 여러 정파가 나름대로 개헌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터에 집권당의 입장이 모호하다면 공연한 오해나 잡음을 부르기 쉽다.
지금 사회 일각에는 여야의 타협노선에 의혹을 느끼는 흐름이 분명히 있다. 스스로 소외되었다고 생각하는 그런 의혹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책임있는 당사자들이 빨리 개헌방향을 제시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여론을 모으고 정리해서 국민적 합의에 바탕을 둔 단일안을 만들어 내야 한다.
만의 하나라도 새 헌법이 민의와 배치되는 방향에서 만들어진다면 국민들의 승복을 받아내기 어렵고 따라서 오늘과 같은 정치불안을 해소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과거 우리의 헌법은 국민의사와는 관계없이 특정인의 집권이나 정권 연장을 목적으로 제정되고 개정되곤 했다. 이제 헌법문제를 둘러싼 그와 같은 비민주적인 악순환은 청산되어야할 시점에 왔다.
이미 공화국 형성초기에 완결했어야 할 체제정립을 헌정 38년이 되는 지금까지 매듭짓지 못하고 논란을 계속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모든 정치 지도자들은 부끄러움을 느껴야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