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이 법망에 걸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날품팔이 부모 밑에서 자신과 세 동생의 학비를 보태려고 간헐적으로 이웃집 자녀를 가르쳐온 여대생이 비밀과외를 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자 너무 획일적이고 경직된 법집행이란 여론이 일고있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5일 고려대생 한혜숙양(21·영어교육3)을 사설강습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하고 한양에게 두딸을 맡겨 가르치게한 김동준씨(49·한국전기통신공사 직원)와두딸의 명단을 사회정화위원회에 통보했다.
한양의 혐의사실은 작년6월부터 1년동안 서울삼선동5가177 김씨집에서 중3·중1생인 김씨의 두딸에게 하루 2시간씩 영어·수학을 가르쳐주고 월8만∼10만원씩 받았다는 것.
그러나 김씨의 부인 장옥선씨(48)는『이웃에 살며 자주 놀러오던 한양이 착하고 공부도 잘해 두딸이 모르는게 있으면 물어보도록 했고 너무나 한양집이 가난해 목돈아닌 3천∼5천원씩 용돈으로 도와준 정도였는데 비밀과외라니 어처구니가 없다』고 했다.
한양의 아버지(47)는 날품팔이 근로자고 어머니(45)는 공사장에서 한상에 8백원씩하는 밥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어려운 집안.
한양이 고향 여주의 이포여중 2학년때인 8년전 담임교사가 공부를 잘한다며 서울유학을 권유하자 부모들이 소작일을 그만두고 모두 상경, 서울장위동231의 144에서 셋방살이를 시작한 것.
김씨집안과는 이웃에 살아 친하게 지내는 사이.
김씨는 25년째 체신부와 한국전기통신공사에 근무, 월40만원의 봉급으로 근근 생활하는 여유없는 살림이었지만 한양이 인형공장 공원·종이봉투풀칠하기·겨울방학 교통지도원등으로 어렵게 학비를 마련하는 것이 딱해 용돈을 주었고 한양은 이에 보답하는 뜻으로 자녀들을 가르치게 됐다는 것.
한양은 어려운 처지에서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아 휘경여고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지난해 2학기 평점은 4.5점 만점에 3.5점으로 상위권.
「영어선생님」이 꿈인 한양은 구속되면서도 『혹시 영어선생님되는데 지장이 있는 것 아니냐』고 수사관들에게 물어 주위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에대해 법조계에서는 한결같이 『너무 경직되고 가혹한 법적용』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 변호사는 법이론상 실정법이 없더라도 처벌해야하는 자연범법과 법이 있기 때문에 처벌되는 행정범법으로 나눈다며「한양은 누가봐도 법때문에 죄인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양이 어려운 집안을 도와 동생과 자신의 학비마련을 위해 이웃자녀들을 가르친 것은 어떤면으로는 칭찬할 미담이고 과외를 단속하는 법(사설강습소에 관한 법률)자체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시점에서 한양의 구속은 그 법에 대한 준법정신마저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한편 한양의 구속사실이 알려지자 모교의 김충배지도교수는『말썽한번 없었던 모범생인데 너무 안타깝다』며 6일 경찰서를 찾아가 탄원서를 내고 관용을 호소했으며 한양의 구명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