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기금 1조원의 용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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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석유사업기금을 두고 여당과 정부 각 부처간에 활용방안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원유가 하락이 몰고 온 망외의 이득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활용방안을 강구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모처럼의 기회에 얻어진 여유인 만큼 가급적이면 부처의 이해나 소관을 떠나 국민경제의 차원에서 가장 유효하게 쓰여지는 것이 소망스러움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최근의 움직임을 들어보면 이 같은 문제에 대한 각 부처의 입장들이 너무나 대조적이고 견해차이가 심해 그런 논의가 중지를 모으는 차원을 떠나 아전인수나 백가쟁명을 방불케 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 같은 이견의 대립은 정부간에서뿐만 아니라 여당과 정부간에서도 뚜렷이 부각되고 있음은 주목할만하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이 같은 각계의 활발한 관심과 의견제시가 자칫하면 모처럼의 과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각 부처나 당에서 제시한 의견들은 모두가 나름대로 훌륭한 명분과 정책의지를 담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측면, 즉 이 기금이 과연 얼마나 조성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 뒷전에 밀려나 있다. 현재 정부는 연말까지 1조 1천억원의 기금조성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숫자는 너무 많은 가정과 변수를 안고있어 실제로는 허구의 숫자다.
1조 1천억원의 기금이 전제하고있는 국제 원유가는 배럴 당 15달러인데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15달러 유가가 연말까지 지속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이미 세계석유소비는 경기회복과 함께 늘어나는 추세에 있고 이런 추세는 소련의 원자력발전소 사고이후 더욱 현저해질 공산이 커졌다. OPEC는 18달러 수준으로의 회복을 올해 1차 목표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도 되였다.
국내적으로도 이 기금목표가 추가 유가인하를 배제하고 기금 징수율도 그대로 간다는 전제아래서만 가능하다.
이처럼 불확실성과 불가변성을 동시에 전제하고있는 기금목표는 장부상의 숫자에 불과하다. 따라서 성급한 제논의 물대기는 무의미할 뿐 아니라 기금자체의 효율을 떨어뜨릴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 3저의 이득을 나누어서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이 여유를 생산적으로 온축하여 새로운 경제의 활력소가 되게 활용하는 일이다.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기금의 용처는 저절로 우선 순위가 정해진다.
당면한 경제의 최대 과제가 새로운 경쟁력과 기술혁신을 위한 대규모의 산업혁신운동인 만큼 1차적으로는 산업구조 개혁에 활용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일시적 경기대응 수단이나 재정수요 충당으로 소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 점에서는 상반기중의 기금운영은 바람직한 방향이라 볼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정부가 이 같은 기금의 조성에만 급급하여 무리하게 운영할 경우 의외로 민간에 주름을 미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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