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뚜막에 아이들 놓아둔 셈|-화재참사 계기로 본 복합건물의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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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눈가림 소방행정이 대낮 8명 희생 참사 화재를 불렀다.
복합건물에 잡동사니 가게들이 들어차 휘발유·솔벤트등 위험물을 쌓아두는데도 위층엔 허가없는 탁아소등 어린이 교육시설까지 입주, 철없는 어린이들이 부뚜막에 올라앉은 꼴이 됐다.
옥상으로 가는 비상 대피로 출입문까지 평소 잠가 놓아 불이 나자 어른도 피할 새 없이 질식해 숨졌는데 경찰은 최근 학생투신등을 막는다고 2층 이상 건물의 옥상 출입문 봉쇄를 지시해 놓고 있어 언제 또 어이없는 참사를 부를 지 예측할 수 없다.
월계동 동신아파트 상가 화재참사를 계기로 또 한번 드러난 복합건물·무허탁아시설등의 문제점을 캐본다.
◇문제점=29일 화재가 난 월계동 동신아파트 상가는 1층에 의류·신발·스포츠용구·완구등 불이 났을 때 유독가스를 내는 상품을 취급하는 가게와 화기를 취급하는 세탁소 및 제과점·양품점등 14개 점포가 들어있다. 또 2∼3층에는 유치원·미술원·서예교실·피아노학원·노인정·교회등이 들어있는 대표적인 잡동사니 복합건물. 아래층에서 불이 났을 때 대형 인명 사고가 날 수 밖에 없는 실정.
상가건물은 남쪽과 북쪽 끝 2곳에 계단이 있으나 불이 삽시간에 1층 매장으로 번져 발생한 연기와 유독가스가 연통 구실을 한 계단을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는 바람에 대피로가 없었다.
주민들은 세탁소의 화재 위험성을 들어 지난해 10월부터 여러차례 이전조치를 취해줄 것을 구청등에 진정해왔는데 관계당국이 법규만을 내세워 그대로 방치했기 때문에 참사를 빚었다고 행정당국을 비난했다.
◇복합상가=서울에는 이처럼 갖가지 용도의 상가와 시설이 잡동사니로 들어서 있는 중·소형 복합건물이 주택가·개인 아파트·시장주변등에 3천여개나 있으나 재개발로 신축한 것 이외에는 대부분 낡고 협소하며 소방시설이 제대로 돼있지 않다.
그런데도 건축법상으로는 주택, 노유자·의료시설과 숙박·위락·공장·위험물 저장시설만한 건물에 들지 못하게 규제할 뿐 나머지 용도의 시설은 복합건물안에 함께 들어갈 수 있게 돼있어 복합건물관리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불이 난 동신상가도 근린생활시설인 세탁소와 노유자·교육시설인 유아원·유치원·노인정등이 함께 들어있어 인명피해가 컸다.
대치동 S아파트단지 상가에서도 작년봄 월계동 사고와 똑같은 사고가 난 일이 있다.
3층 건물의 2층에 있던 세탁소에서 불이나 3층에 있던 태권도학원 어린이들이 연기에 질식, 참사 직전에 긴급출동한 고가 사다리차에 의해 구조됐다. 그러나 이 상가는 사고 후 2층 세탁소는 없어졌으나 지하에 다시 세탁소와 목욕탕이, 2∼3층에는 유치원·주산·미술·음악학원및 태권도 도장등 6개의 어린이 교육시설이 들어있다.
◇무인가 탁아소=현행법상 유아 교육시설은 유아교육진흥법에 따라 내무부와 시·도가 지원·인가하는 새마을 유아원과 교육법에 따라 문교부와 시·도교위가 인가하는 유치원예·체능계학원등 사설학원의 두 가지가 있다. 그러나 인구와 맞벌이 부부가 늘어남에 따라 유아교육시설의 수요도 급증하고 있어 사설 무인가 탁아소가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서울의 경우 시나 교위에서조차 그 숫자와 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갑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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