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절보다 대국을 보는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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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노태우 민정당대표와 이민우 신민당 총재간의5·29회담은 헌법문제를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 나가겠다는 여야의 기본자세를 확인함으로써 정국의 긍정적 전개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회담은 선행조건 없이 국회헌법특위를 구성한다는 원칙과 함께 전두환 대통령과 이 총재간의 영수회담도 조속한 시일 안에 실현시키기로 합의했다.
당초 신민당이 헌특구성의 선결조건으로 내세웠던 구속자 석방문제에 대해서는『대타협의 여건 조성을 위해 각별한 관심을 갖는다』는 선에서 머무르고 말았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영수회담을 위한 정지작업이란 구실을 훌륭히 해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신민당 측 요구가 아니더라도 구속자 문제가 시국을 순리로 푸는데 장애요인임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정부·여당의 입장에서도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된다는 사실은 여러 차례 지적한 그대로다.
다만 이 문제는 정당간의 합의차원에서 보다는 통치권자의 결단에 의해서만 해결이 가능한 것이므로 최고위회담의 과제로 넘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재야가 납득할만한 범위와 내용의 구속자 석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헌특구성이 어렵다』는 동교동 측의 반발에도 물론 일리는 있다.
그러나『한꺼번에 모두가 석방 될 수는 없는 것이므로 앞으로 협상이 진전되면서 조금씩 해결해 나가겠다』는 이 총재의 입장이 보다 현실적인 접근 태도일 것 같다.
되풀이 강조한대로 지금은 보다 대국적인 시각에서 시국을 풀어 나가지 않으면 안될 중요한 시점이다.
헌특의 활동시한·구성비율 등 개헌문제를 순탄하게 풀어 가는데 장애가 될 수도 있는 불 확실 요인들은 너무도 많다.
모처럼 성숙한 대화의 분위기를「대타협」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입장이나 주장을 굽힐 수도 있는 신축적인 대응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양보는 굴복이 아니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후퇴란 말이 있고,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란 우리의 속언도 있다.
보다 큰 양보를 얻어내기 외해자신의 주장을 굽히는 것은 전략전술이란 측면에서는 물론 민주정치의 원리에도 합치하는 일이 아닌가.
구속자 문제에 대한 이 총재의 유연성은 개헌시한에 대한 입장완화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민정당이 정기국회에서 개헌안을 통과시키기로 한 마당에 9·20이전이란 시한을 굳이 고집할 이유는 없고 따라서 개헌안을 확정하는 국민투표 역시 한두 달 늦어져도 무방하지 않겠느냐고 한 게 그것이다.
이런 능소능대한 자세는 여당에 대해서도 요구된다. 민정당 쪽이 구속자 문제를 포함해서 모든 정치현안에 대해 전향적인 대응을 한 것은 그런 뜻에서 아주 다행스럽다.
여야의 자세가 이처럼 신축 자재 한 이상 헌법에 관한 대 타결도 성취하지 못할 까닭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시간이 촉박하다.「합의개헌」이 이룩된다해도 대통령선거법·국회의원선거법·언론기본법·노동관계법·집시법 등 손질해야할 과제는 실로 산적해 있다.
큰 테두리의 목표에 대한 합의가 이룩된 이상「소절」에 구애되어 판을 그르치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노-이 회담의 미결의 과제를 청와대 고위회담에서는 속 시원히 풀어 이번에야말로 정부선택권을 국민에게 되돌려 주는 역사적인 과업이 순탄하게 진전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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