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전 서울·인천의 풍물|옛사진 수집가 정성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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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가 가진 것은 다 잃었지만 우리가 잃었던 것은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순간 눈시울을 붉히며 그는 말을 이었다.
『주위에서 미쳤다는 얘긴 이제 안합니다. 「기적」이라고들 하죠』
옛사진수집가 정성길씨(46·대구시 남구 풍덕2동 117의136). 지난해7월 서울 동방미술관에서 사진전 「사진으로 보는 백년전의 한국」 을열어 화제를 모았던 바로 그사람이다. 지난 7여년간 사재를 털어 세계에 산재해있던 3천5백여점의 옛사진자료를 모으고 「누구의 도움도 받지않고」 28번의 전국순회전시회를 가겼던 그가 이제 이를 총정리하는 사진자료집을 출판해보려는 마당에서 좌절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버틸 경제력을 상실한 것이다.
『한권의 사진집으로 1백년의 역사를 이어보고 싶었읍니다. 그러나 그 어려운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한채 미아가 된 느낌입니다』
정씨가 옛사진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지난 74년부터다. 당시 독일 함부르크에서 물리치료사 공부를 하고있던 그는 우연히 한 독일신부를 알게 됐다. 그 신부는 원산 덕원수도원 사진 50점을 소장하고 있었는데 『보관하기가 부담스럽다』 며 이를 정씨에게 넘겨줬다.
처음엔 별 흥미가 없었으나 이를 고증하고 귀한 자료임을 알게 되면서부터 여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특히 그들로부터 『한국인들은 왜 한국것을 안 챙기느냐』는 말을 들었을때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정씨는 귀국후에도 독일인들의 계속된 소개로 잇달아 새로운 사진자료를 입수할 수 있었으며 이 작업은 프랑스까지 확대됐다. 그러나 이것들은 선교사들이 찍은게 많아서 종교 관계가 주류였다..
정씨는 역사적·민속적·기록적 사진들을 찾을수 없을까 궁리끝에 미국에까지 손을 뻗치게 됐다.
그곳에서 외교 고문관등을 통한 좋은 기록사진들을 입수할수 있었다.
정씨는 그때까지는 서로 소장하고 있는 사진들을 교환함으로써 사진을 입수할 수있었으나 고문서관에 보관된것들은 돈을 내고 사야 했다.
그는 돈을 쓰기 시작했다. 어떤 사진은 복사품이나 슬라이드 한장에 몇달러씩 준것도 있다. 이렇게 해서 세계각지로부터 지금까지 모은 게3천5백여점. 그동안 6천여만원을 썼다고 한다.
출판이 좌절되면서 마음이 답답해 관계기관에라도 찾아가면 『뜻은 좋지만 예산이없다』는 말을 듣고 나온다.
『당신이 좋아 시작한 일이니 당신이 끝내라는 식의 얘기를 들을땐 그간의 작업에대한 자부심보다도 충격을 느낍니다』
정씨는 이것이 결국 돈의 문제라기보다 정신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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