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시」초청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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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의 제1야당인 사회당의「이시바시」 중앙집행 위원장에 대한 김영삼 신민당 고문의 방한초청 파문이 신민당의 한일 의원연맹 탈퇴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일본 사회당은 창당이래 한국을 헐뜯고 주제넘은 참견을 일삼아왔다. 그러한 정당의 대표가 어느날 갑자기 방한하겠다는 것을「묵시적」으로 한국을 인정하려는 자세 변화가 아니냐고 선뜻 받아들이려는 태도는「외교의 명분·일관성」, 나아가「국가체통」에 손상을 입힌다는 정부주장은 상당한 근거가 있다.
국가이익 차원에서 추진되는 중소 등 대 공산권 문호개방정책을 하나의 정당에 불과한 사회당에도 무차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는 그 동안 사회당이 취한 대한자세나 우리와의 관계에서 생각할 때 외교 수순도 체통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민당의 반발도 나름대로 일리는 있다. 사회당의 대한 자세변경은 우리 외교의 하나의 숙제인 만큼 외교의 공백지대에 대해 야당이 나서 보완외교를 해주겠다는 것이다.
외교의 이니셔티브를 뺏겼다고 해서 비자발급을 거부하는 것은 정부·여당의「외교독점」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발상으로 초당외교의 명분을 부인하는 처사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외교에 있어 무엇보다 명분이 중요하고, 국가전체이익을 관리하는 쪽에서 정책이 결정돼야 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신민당은 외교의「명분 관리 속성」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정부가 요구하는 명시적 한국인정을 사회당이 하지 않은 채 방한하려는 것은 그들 나름의 정강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명분에서다.
그렇다면 신민당이 사회당의 명분만 인정해주고 우리외교의 명분을 포기하라고 압력을 가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태도가 아닐까.
더구나 한일 의원연맹의 탈퇴를 결의한 것은 감정적 반발이라는 인상마저 준다.
반면 정부 또한 최소한 야당이니셔티브의 외교문제에 대해 협량하다는 인상은 주지 않아야 할 것 같다. 초당외교를 통한 야당의 보완적 기능이 순류로 흐르도록 평소에 설명하고 협의하는 폭넓은 노력이 있었던들 이와 같은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번의 논쟁이 자칫 일본사회당 및「이시바시」위원장의 주가만 높여주고「초당외교의 조그만 근거」마저 유산시킬까 걱정이다. 그저 초당외교의 본격적 출발을 위한 내부고통 정도로 소화돼야 할 것이다. <박보균 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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