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의 웃음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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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어떤 문학행사에 참석한「콜」수상에게 작가「귄터·그라스」가 말을 걸었다.『수상각하께서는「슈타인」부인에게 쓴「괴테」의 편지가 최근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그러자「콜」수상은 난처한 듯이 말했다.『그건 현 체신상의 책임은 아닐거요. 아마 그 편지는 전임 체신상 시절에 보냈던 모양이지요.』-
서독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었던『「콜」수상의 웃음』이란 책에 실린 유머 한 토막이다.
우리 나라의 참새 시리즈처럼 서독에서는 이 시리즈가 4권이나 나왔다. 어딘가 촌스러워 보이는「콜」수상을 풍자는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모독을 하자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고지식한 모습에 애정을 표시한 것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자기네 나라의 대 문호「괴테」도 모르는 무식장이 수상을 만들어 놓고 즐거워하는 국민이나, 그 유머를 읽고『스스로도 웃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라고 말하는 수상에게서 우리는 그들의 정신적 여유를 볼 수 있다. 그것은 서로의 신뢰와 유대감의 바탕 위에서 우러나오는 밝고 건강한 웃음이다.
유머는 사람의 마음을 이처럼 너그럽고 부드럽게 만든다.
유머에 대해서 가장 탁월한 에세이를 쓴 사람은 중국의 석학 임어당이다. 그는『유머의 기능은 물리적이라기보다 화학적이기 때문에 사상과 경험을 모두 변질시켜 버린다』고 했다. 그래서 국제회의 같은 곳에 세계적 유머리스트 5명만 참석시키면 전쟁도, 분쟁도 발붙일 곳을 잃어버릴 것이라고 세파한 일이 있다. 물론 임어당의 유머다.
짜증스럽고 고통스런 일상에 한 토막의 유머는 산뜻한 청량제 구실을 한다. 그런데 그 유머를 우리는 점점 잃어가고 있다. 웃음을 잊은 세태 때문이다.
한국인의 웃음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미술사학자들은 그 웃음의 원형을 신라의 토우에서 엿볼 수 있다고 한다. 약간 이지러진 듯한 표정으로 입을 방싯이 오므린 채 크지도, 작지도 않은 웃음을 참을 듯이 수줍게 웃는 토우의 웃음은 가장 소박한 한국인의 웃음이라는 것이다.
그 웃음소리가 지난 20일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쏟아져 나왔다. 5월제 행사에 참가한 2천여 서울대생들이 벌인「대통령 모의선거」에서 기만해, 한민중, 구대타 후보가 펼친 풍자와 유머가 그 동안 웃음에 주렸던 학생들의 마음을 활짝 열어놓은 것이다.
웃을 줄 아는 사람은 심신이 건강한 사람이다. 유머가 있는 가정, 유머가 있는 사회, 그리고 유머가 있는 정치는 결코 불행이 없을 것이다.
대학가에서 들려온 모처럼의 웃음소리가 단비처럼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도 뿌려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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