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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中日 '통화스와프 삼국지'…한-중 '밀월' 균열 조짐에 한발짝 다가서는 일본

중앙일보

입력

한국과 일본 경제수장들의 만남만으로도 상징적 의미가 크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만큼 많은 얘기가 오갈 것이다.”

27일 한ㆍ일 재무장관 회의를 앞두고 기획재정부 관계자가 전한 분위기다. 과거사ㆍ독도 문제에 양국의 외교 관계는 늘 얼음장 위를 걷는 듯 위태로왔다. 경제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2012년 이후 중단됐던 양국 재무장관간 연례 회의는 지난해 간신히 재개됐다. 올해 역시 성사가 불확실한 상황이 상당기간 이어졌다.

올해 회의가 특히 주목을 받는 건 시점 때문이다. 북한 핵과 사드(THAADㆍ고고도 미사일 방어체제)라는 안보ㆍ외교 문제로 생긴 갈등은 한국과 일본, 중국 세나라간 경제 관계에 파장을 미치고 있다. 한-중의 ‘밀월’에는 미묘한 균열이 일어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반면 냉랭했던 한-일은 관계 개선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시금석은 한-일간 통화스와프의 재개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재무장관 회의를 앞두고 일본이 우선 분위기를 띄웠다. 24일 아소 다로(麻生太郞) 재무상은 기자회견에서 “한국 쪽에서 (통화스와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통화스와프는 이번 회의의 공식 의제에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여러 나라와 통화스와프를 맺는 게 나쁠 건 없다”면서 “장관들의 만남에선 공식 의제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현안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논의 여지를 열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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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스와프는 양국 중앙은행이 필요할 때 미리 맺어놓은 계약대로 서로의 통화를 맞바꾸는 계약이다.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해져 외화조달이 어려워질 때를 대비한 ‘안전판’역할을 한다. 특히 한국처럼 기축통화(달러)나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결제통화(엔, 유로) 등을 갖고 있지 못한 국가에는 ‘제2의 외환보유액’ 의 의미를 갖는다. 외환보유액이 미래를 위해 적립해 놓는 ‘적금’이라면, 외환보유액은 필요할 때 꺼내쓰고 갚는 ‘마이너스 통장’인 셈이다.

한-일간 체결된 통화스와프 협정 규모는 2011년 700억 달러에 달했지만 현재는 ‘제로’상채다. 2012년 이후 만기가 닥친 계약을 갱신하지 않으면서 지난해 2월 자연스레 종료됐다. 독도문제가 불거지면서 양국 관계가 얼어붙은 게 배경이었다. 일본은 시큰둥했고, 우리측도 굳이 나서서 요청하지 않았다.

일본이 발을 빼는 사이 공백을 메우고 들어온 건 중국이었다. 중국은 2009년 스와프 규모를 300억 달러로 늘린데 이어 2011년 560억 달로 규모로 확대했다. 중국이 맺은 스와프 규모로만 놓고 보면 홍콩(600억 달러) 다음으로 많다. 몇해전부터 중국과 급속히 가까워진 영국(550억 달러)도 한국 다음이다. 정부 관계자는 “스와프 규모를 보면 중국이 한국에 파격적인 배려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한-중간의 밀월은 2015년말 한ㆍ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양측 경제관계에도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지난 4월 유일호 부총리와 저우 샤오촨(周小川) 인민은행 총재와 면담에서 양측은 내년 10월 만기가 돌아오는 스와프협정은 연장한다는데 일찌감치 원칙적 합의를 했다. 다만 구체적 실무 협의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기재부 관계자는 “통상 만기 1년을 앞두고 실무 협의를 시작하는 게 관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측은 한국이 줄곧 요청해 온 규모 증액 문제에 대해서는 일단 난색을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일 재무장관 회의를 계기로 일본과의 통화스와프 재개 논의는 일단 물꼬가 트일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 스와프가 재개되면 한국으로선 여러모로 유리한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국제 결재통화인 ‘엔화’를 보유하고 있는데다, 기축통화국인 미국과도 ‘무제한 스와프협정’을 맺고 있는 국가다. 일본과 스와프가 재개되면 간접적으로라도‘달러우산’속으로 편입되는 효과가 생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합의를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양측 모두 ‘탐색전’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제금융시장이 안정적인데다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은 최상의 상태여서 스와프 확대가 당장 필요한 건 아니다”고 말했다. 스와프 체결의 ‘댓가’로 일본측이 무엇을 들고 나올지가 향후 논의의 변수다. 기재부내에선 아소 재무상이 “한국이 필요하다고 하면”이란 단서를 단 것 역시 앞으로의 '딜'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통화동맹’ 스와프를 둘러싼 한·중·일의 역학관계를 감안하면 한국으로선 일본과의 스와프 재개가 중국과의 관계에 미칠 영향 역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정부 한 관계자는 “단순히 국제금융 측면만이 아니라 정치ㆍ경제ㆍ외교 전반을 감안한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조민근 기자 jm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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