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사태는 미 CIA서 연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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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2월 22일 「엔릴레」필리핀국방상과 「라모스」참모총장서리의 반란에서 25일 「마르코스」가 망명하기까지 격변의 4일간은 미중앙정보국(CIA)이 80여명의 요원을 투입, 기획·연출한 작품이었다는 주장이 구체적으로 나오고 있다.
필리핀의 전외교소식통이나 「마르코스」전대통령의 증언으로부터 드러나고 있는 이 시나리오의 윤곽을 시간별로 종합해보면-.
①2월22일 당시 「엔릴레」국방상과 「라모스」참모총장서리가 반란을 일으켰고 「하비브」미대통령특사는 이날 필리핀을 떠났다.
②2월23일 반란파는 마닐라근교의 군기지에 거점을 확보. 그러나 지지세력은 25일까지도 15만 필리핀병력 중 겨우 1천5백명 정도였다.
③같은 날 상오 9시쯤 「마르코스」대통령은 전국에 비상사태 선포. 10시3O분 「엔릴레」 국방상등은 임시정부수립을 선언. 약 20분 후 말라카냥궁상공에는 무장헬기가 날아와 총격을 가했다.
이 헬기는 필리핀 공군소속이었으나 클라크미공군기지에서 장비와 연료를 보급 받았다.
④같은 날 상오 「마르코스」는 대통령취임식을 강행했으나 그날 밤 가족과 함께 3대의 헬기로 클라크공군기지로 갔다가 괌도를 거쳐 하와이로 망명.
필리핀의 유력한 전외교소식통에 따르면 「하비브」특사와 함께 CIA요원 80명이 필리핀에 입국했다는 것이다. 「마르코스」의 측근은 모두가 『미국이 사전 준비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마르코스」는 망명지인 하와이에서 지난 4월 미국의 TV와 최초의 단독회견에서 『나는 군을 움직일 생각이었으나 미국이 해병대를 투입하겠다고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제반 「상황증거」로 미루어 볼 때 자연 하나의 「스토리」가 도출된다. 즉 미국은 필리핀군이 신속히 「코라손」여사 측에 합류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 무장헬기로 대통령궁을 공격하게 해 「마르코스」에게 압력을 가했으며 해병대 투입이라는 또 다른 압력으로 「마르코스」로 하여금 고향(일로코스 노르테주)에서 재기의 기반을 마련하도록 마음을 굳히게 하는데 성공했으며 그를 고향으로 데려가 주는 것처럼 위장, 하와이로 그를 공수했다는 것이다. <유재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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