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의무교육 미룰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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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학교 의무교육은 도대체 언제부터 실시하는 것일까. 어물쩍하다 아주 2000년대 이후의 과제로 넘어가는 것은 아닐까.
중학교 의무교육을 둘러싸고 그동안 여러 차례 되풀이되어 온 정부의 조삼모사식 변덕을 보면 이런 의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지난번 선거 때만 해도 중학의무교육의 92년 완결은 정부·여당의 철석같은 공약이었다. 그러나 경제기획원은 며칠전 이를 금년 수준에서 동결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 대신 농어촌지역 실업계 고교 진학할 경우 등록금·수업료 등을 면제해 준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정부의 공약은 백지화한 셈이 된다.
중학교 의무교육을 실시해야하는 이유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국민교육이 국가의 책무라는 세계적 추세와 함께 국민의 전반적 자질향상이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인식에 바탕하고 있다. 미국·영국 같은 선진국에서 고교까지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경제발전 단계가 우리 나라만 못한 요르단·스리랑카 등에서조차 중학의무교육을 실시하는 까닭도 그런데 있다.
물론 전면적인 중학의무교육 실시에는 연간 4천억원이라는 막대한 투자가 소요된다. 빠듯한 국가재정에서 그만한 재원을 염출한다는 것이 손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국민학교 의무교육이 완전무상으로 정착되는데도 30년이란 기간이 걸렸다.
예산당국은 현재 중학진학률은 99%로 수업료가 없어 자녀를 중학에 진학시키지 못하는 가정은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중학의무교육 동결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논리대로라면 국민학교에 돈이 없어 진학 못시키는 가정은 거의 없을 테니 국민학교 의무교육도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더우기 기초교육의 충실화란 명분 밑에서 징수하기 시작한 교육세가 연간 3천억원이 넘는다. 그리고 매년 총 국가예산의 3분의 1은 교육부문에 투자된다.
폭발적인 교육수요에 이 정도의 재원으로도 훨씬 못 미친다는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은 우선 농어촌지역부터 실시하고 점진적으로 대도시까지 확산시킨다는 정부의 고충을 이해하고 수긍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제6차 경제사회개발 5개년 계획기간 중에도 실시를 않겠다는 것은 중학의무교육을 포기한다는 말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중대한 공약위반일 뿐 아니라 대국민 신의마저 저버린 일이다.
중학교 진학률이 99%에 이르렀다는 것은 국민의 교육열에 의한 것이다. 그럴수록 이런 국민의 높은 교육열을 수용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배려해서 실천에 옮기는 것이 정부의 의무일 것이다.
단골메뉴를 「공약화」시키는 일 못지 않게 유감스러운 것은 정부의 의지결여다. 국방의 의무와 함께 국가가 지는 최대책무로 꼽히는 교육의 의무를 정부가 이처럼 소홀히 한다면 정부가 뭐라 해도 국민들이 믿고 따를 수가 없게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적 여망에 따라 원칙이 선 이상 이를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
국민의 높은 교육열, 생활수준의 전반적 향상 등을 감안하면 중학의무교육을 백% 정부가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실제로 백% 의무교육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분간 수익자에게 일부부담을 시키면서 차츰 그 범위를 확대시키는 방안도 고려해 봄직하다.
예산걱정에만 매달리다 보면 중학의무교육은 부지하세월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과연 국가발전에서 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묻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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