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에 가락실어 불심을 전파한다|작곡가 유승엽씨와 「불음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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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외로움으로 나 여기 섰네/허전한 마음 나 여기 섰네/부풀어오르는 이 가슴에 물결과/그대 사랑은 아직도 내것이네/아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님이시여 님이시여…」 이쯤되면 보통 대중가요와는 격이 다른 맛을 풍기는 노래다.
「당신의 소리는 침묵인가요/당신이 노래를 아니불러도/당신의 노래는 들려와요/당신의 소리는 침묵이어요…」앞의 노래는 『나 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님이시여』고 뒤의 것은 『반비례』다.
요즘 관심의 폭을 넓혀가고 있는 「불음가요」다.
불음가요란 불교의 종교성을 가미한 대중가요라 할까.
작곡가 유승엽씨(40)를 중심으로 왕성한 작품활동이 벌어지고 있다.
유씨는 왕년의 유명한 대중가요 작곡가다. 『하얀 민들레』『제비처럼』『밤차』『겨울장미』등 히트곡을 만들어냈다. 그는 한때 직접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대중가요에서 무엇인가 허전함을 느낀 그는 70년대에 스스로 찬불가를 부르며 포교활동에 참여하다가 드디어 80년대 들어 대변신을 시작했다. 일반 대중가요와 손을 끊고 불음가요에 몰입했다. 보다 넓은 작품세계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82년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불음 가요라 할 수 있는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님이시여』『영산회상』『산하나둥둥』등 9곡을 발표했다.
유난히 춥던 한겨울 오대산월정사에서 보름동안의 산고끝에 만들어낸 것이다. 시는 스님들이 짓고 노래는 가수 김연숙씨가 불렀다. 『나 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님이시여』는 지금도 4월 초파일만되면 불려진다.
그는 여기서 만족할 수없었다. 심한 「갈증」을 느낄 때 그에게 운명적인 일이 벌어졌다. 바로 만해(한룡운)스님과의 세월을 격한 만남이었다. 그는 마당 세실극장과 관계를 맺고 만해스님의 일대기를 뮤지컬화한 『님의 침묵』 제작에 참여하면서 『님의침묵』『길이 막혀』『반비례』『나룻배와 행인』 등 33곡을 지어냈다. 꼭 1년이 걸렸다. 84년의 일이다.
그즈음 그의 눈을 번쩍 띄게한 것은 법정스님이 우리말로 옮긴 『반야심경』이었다. 그때의 심정을 그는 이렇게 말한다.
『불교 유신론 이후 이렇다할 불교혁신이 없는 시점에서 어떻게 보면 건방지고 무모한 행동일수도 있는 음모(?)를 결심한 것이지요』
유씨는 곧 이 불경에 곡을 붙이는 작업에 착수했다. 석가모니를 작사자로 모시기로 한 것이다. 단순히 주문으로만 알고 외던 진리의 법문을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 음악으로 울려퍼지게 하고싶었다.
85년 그는 『하나의 생명체』를 탄생시켰다. 『우리말 옮김 반야심경』을 음반으로 낸 것이다. 하루에 2시간씩 8개월에 걸친 작업이었다. 노래는 13분간 계속된다. 동국대 철학과에 재학중이던 김미현씨가 불렀다. 올 봄에 대학을 졸업한 김씨는 유씨와의 만남을 『부처님의 인연』이라고 말했다.
청아한 목소리의 주인공인 그는 불교노래에 어울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유씨는 올봄에 다시 「진리의 말씀」인 『법구경』 4백23편중 10편을 뽑아 곡을 붙였다. 노래는 역시 김미현씨가 불렀다.
「악의 열매가 맺기 전에는/악한 자도 복을 만나고/선의 열매가 맺기 전에는/선한 자도 화를 만난다…」(『악의 열매』중에서)
「비록 백년을 살지라로 백년을 살지라도/어리석어 마음 흩어져 있다면 마음 흩어져 있다면./마음의 고요를 가진 사람이 마음의 고요를 가진 사람아/다만 하루를 살지라도 그 하루가 훨씬 낫다…」(『백년을 살지라도』 중에서) 유씨는 불음가요가 가요계의 청량제 역할을 했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단조로운 가요장르에 다양성을 주고싶어한다. 불음가요엔 민요적 가락을 즐겨 쓰고 있다.
최근 불음가요에 대한 현실적 필요성에 따라 몇몇 의욕있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설봉스님이 노래말을 짓고 길옥윤·강승식씨 등이 곡을 붙인 일이 있고 오공스님·범조스님과 이은하·홍세민·「윤희와 윤미」등이 불음가요를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주변여건이 좋지 않아 큰 진전을 이루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불음가요가 대중화하는데는 몇가지 난관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불교지도자들을 비롯한 불교계가 불교음악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방송이 종교냄새가 난다고 틀어주길 꺼려하는 점도 큰 어려움중의 하나다.
결국 「벽」을 느낀 유씨는 직접 불음가요를 들려주기 의해 스스로 나서기로 했다.
오는 16일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대원정사에서 법가발표회를 갖는 것을 계기로 「불러주는 곳은 어디든 찾아가며」전국을 순회키로했다. 그러면서도 이 일이 혼자하기엔 벅찬 작업이란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있다. <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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