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사는 지혜|한복차림에 슬리퍼는 꼴불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일본에 가면 「착부교실」이란 간판이 우리의 미장원만큼 흔히 눈에 띈다. 착부(기쓰께) 란 「옷을 바르게 입는 법」이란 뜻. 따라서 착부교실이란 일본여인들의 전통의복인 「기모노」 바로입기를 지도하는 강습소다. 거기에는 꽃꽂이 사범같이 자격증을 가진 선생이 있다.
오늘날경제대국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일본은 세계유행의 첨단을 달릴 것 같지만 그들의 전통성 존중은 놀랄 만 하다.
국민의 거의 다수가 부통혼례식을 하고 있는데 당사자들은 물론 하객들조차도 고유의복차림(특히 여성들)으로 참례한다. 그밖에도 「7·5·3」이라 하는 어린이들의 세번의 생일과 20세 성인식날 의식복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실정인데도 착부교실의 존재는 차츰 기모노와 멀어져가는 젊은 세대들에게 전통에 대한 바른 지식을 심어주자는 일본인다운 철저성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돈 적게 들이고 겉치레만 흉내 내는, 또는 한번 그럭저럭 때우면 된다는 고식적 사고방식에서, 아니면 무지에서 빚어진 우리 복식문화에 대한 모독이 허다하다. 전자는 한번 다리미를 댔다하면 녹아버리는 금박의 스란·대란치마의 범람이요, 후자는 명절날 흔히 볼 수 있는 남성들의 동저고릿바람이며, 이보다 더더욱 꼴불견은 여인들이 한복에 슬리퍼를 끄는 풍조다. 고래로 우리 선조들은「의관정제」를 처신의 제1조로 삼아왔다. 이 전통이 바로 오늘날 외국인들이 와서 보고 남녀없이 정장(양복)을 한 인구가 많음에 놀라는 소이다.
그런데도 왜 한복의 경우만은 예외일까? 남성들의 외출복내지 제복은 마땅히 두루마기차림이 제격이며 마고자는 집에서 손님 대할 때 입는 소례복에 해당한다.
돈 많은 여인일수록 굽높은 고무신이 있는데도 굳이 흰 가죽 슬리퍼를 끄는 이유가 만일 허영에 있다면 차라리 옛 귀인들이 신은 온혜(비단신·안은 가죽)에 굽을 달아 신는 편이 훨씬 우아할 것이다. 어차피 많이 걷지 않을 테니까.
한복의 미는 단정의 미다. 청바지차림의 여대생에게조차 슬리퍼로 강의실 출입을 금하는 판인데 한복차림에 슬리퍼는 제발 지양됐으면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