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사태와「갈등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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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인천사태는 우리 사회에서 영향력을 갖는 「동태적 세력」(dynamic forces)을 확연히 드러내 구별지어 놓았다.
지금 자기의 주장과 이익을 강력히 주장하고 이를 행동화하는 세력은 다음 셋으로 집약된다.
첫째가 정부정당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주의 세력이다.
이들은 지금의 정치·경제 체제는 물론 한미동맹을 통한 안보 체제, 그리고 지배 권력의 구조까지도 현 상태로 유지해 나가려 한다.
이 세력은 가능하면 내각책임제이든 대통령책임제이든 간접선거제를 지속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신민당 중심의 개혁파다.
이들은 자유민주주의와 산업자본주의를 고수하면서 지금의 권력구조 변동을 통해 자유화와 민주화를 확대해 나가려는 세력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이 「보수적 자유주의」 (conservative liberals)라는 말은 타당하다.
이 세력은 개헌에 적극적이지만 집권보수세력과의 협상을 거부하지 않는다.
현 정권에 대한 정통성 인정은 공식적으로는 유보하고 있지만 지난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헌법 체제 안에 들어감으로써 사실상 승인한 결과가 돼있다.
권위주의화한 우리의 정치체제를 구미식 민주주의로 환원하려는 것이 그들의 개헌목표다. 그들은 직접선거에 의한 대통령책임제를 내놓고 있다.
셋째가 인천사태를 주도한 혁명적 급진파(revolutionary radicals)다.
이들은 현재의 정치·경제·안보체제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려 한다. 헌법은 「개정」이 아니라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정권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따라서 집권세력과의 타협을 거부할 뿐 아니라 타협에 임하는 신민당마저 규탄한다.
이들은 집권보수파를 타도대상으로, 온건개혁파를 비판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들은 현재의 실정법테두리를 벗어나 초법적 방법으로 사회를 전면 개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행동의 근거를 자연법에서 말하는 「시민저항권」에 두고 있는 듯 하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분명히 혁명적이다.
이 급진세력을 어떻게 해석하고 취급해야 하느냐는 우리사회의 당면과제다.
정부-여당은 이들을 불법을 사용하는 폭력적 반체제로 보고 사법적 차원에서 누르려는 것 같다.
신민-민추는 그들의 과격행위를 단순한 전술로 간주한다. 따라서 강력한 집권세력을 상대로 민주화를 추진키 위해서는 그들의 협력이 있어야 한다고 믿고 그들과의 정치동맹을 꾀하고 있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인간의 계층과 사고·이익·행동도 다양화하기 마련이다. 경제확장은 근로세력의 증대를 가져오고 교육·출판의 팽창은 대중의 의식화를 촉진한다.
인천사태를 주도한 급진파는 이들 기층국민을 대변하는 지도세력으로 자임하고 나섰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현상유지를 추구하는 보수파와 체제 안에서 점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개혁파, 체제 자체의 급진적 변화를 기도하는 혁명파는 있기 마련이다.
인간사회의 갈등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그런 분열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갈등은 인간의 본능상 소멸될 수 없는 문제라고 한다. 여기서 갈등의 제거보다는 갈등의 관리가 문제된다.
사회 안정은 바로 지도층의 갈등관리능력에 크게 좌우된다. 보수파와 급진파의 간격도 갈등관리의 능력과 자세에 따라 얼마든지 좁혀나갈 수 있다.
지금 우리사회의 최대문제는 사회세력의 3극화를 완화시켜 국민의 분열을 하루바삐 통합하는 문제다. 이 단계에서 가장 기피해야할 일은 국민공존에 대한 거부다.
어느 한 계층이나 그룹이 반대세력과의 공존을 거부하고 그 제거를 시도한다면 국민의 통합은 불가능하다. 국민의 단결 없이는 국가목표를 달성할 수도 없다.
공산주의가 배척되는 중요 요인은 그들이 같은 국민의 일부를 「계급의 적」 또는 「인민의 적」으로 몰아 영원히 절멸시켜버리는 데 있다.
정부의 과잉조치나 급진파의 살벌한 구호와 과격한 행위를 모두 우려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지금 우리사회 갈등의 중요근원의 하나는 권력과 부의 과도한 편재에 있다. 따라서 갈등관리의 초점은 당연히 조속한 민주화와 공평한 분배의 실현에 모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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