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가 서야할 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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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 어수선한 세상에 「어버이 날」을 보내며 오늘의 어버이가 설자리를 생각해 본다.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에겐 『공부해라, 공부해라』하는 것이 최대의 덕목이요, 대학에 다니는 자녀들에겐 데모대열에 끼여들어 무슨 변이나당하지 않을까 근심해야 하는 것이 오늘의 선남선녀 어버이의 모습이다.,
「근심」이 어버이가 할 일의 전부는 아닐텐데 어느 하루도 그 어버이는 포근한 마음으로 자부자모의 자리에 않아 자녀들과 진심을 나눌 여유가 없다.
어버이의 진심이라면 자녀들이 건강하고 활달하게 자라 세상풍파에 견디어 내는 의지와 주위로부터 신뢰받는 인격과 건실한 국민의 자질을 두루 갖추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또 다른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선 공부경쟁에 이겨서 세칭 좋은 상급학교의 좋은 학과를 거쳐 사회에 진출하는 것이다. 그것이 삵의 최대목표는 아닐지라도 필요조건임은 부인할 수 없다.
자녀들을 「공부와 시험의 명수」로 키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정작 자녀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한시름 놓을 것 같지만 또 다른 시름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철이 다든 자녀들에게 『데모하지 말라』 『너희는 행동하는 세대가 아니라 사색하고 고민하는 세대다』고 말한들 그 말이 얼마나 설득력과 공감을 자아낼 수 있을까.
학생데모가 옳다, 그르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만한 지각은 다 있는 자녀들에게 견강부회 (견강부회)하는 어버이의 왜소해 보이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라.
그만큼 우리시대는 「어버이다운 어버이」, 「자녀다운 자녀」가 되기 힘든 세상이다.
그렇다고 모든 어버이, 모든 자녀들이 서야할 자리, 지켜야 할 자리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것은 도리어 스스로 타기 해야할 일이다.
어버이가 설자리를 찾고, 지켜야할 자리를 지키려면 먼저 이 세상을 순리로 움직이게 만들어야 한다.
정치는 정치로서 굴러가야 할 최선의 레일을 찾아 가게하고, 경제는 경제로서 가야할 최선의 길을 찾아가도록 해야한다. 교육도, 사회도 모두 마찬가지다.
정치가 제자리를 잃으면 정치권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참견하고 시비하게 되고, 경제가 제 길을 잃으면 사람들은 엉뚱하게 한탕주의나 부러워하거나, 시기하고 마음의 갈등을 느낀다.
순리를 찾는 일은 나 아닌 남이 해주어야할 일이 아니다. 모든 어버이가 어버이의 참 모습, 참 마음으로 돌아가 각기 해야할 바를 하면 그것이 바로 순리다.
이것은 정치인, 경제인, 근면·성실한 사회인, 모든 사람이 해야할 일이고,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때에 비로소 떳떳한 어버이가 될 수 있고, 어버이의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사회는 모든 가정이 단위가 된 큰 가정이다. 그 「큰 가정」이 제자리를 제대로 지키면 작은 가정들은 저마다 제자리를 지킬 수 있다. 큰 가정이 잘못되면 작은 가정들은 공연히 술렁거려 제자리를 지킬 수 없다.
우리 속담에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말이 있다. 서양에서도 이 속담만은 똑같다. 『라이크 파파, 라이크 선』이라고 한다.
모든 어버이들은 1년에 하루가 아니라 매일 매일을 어버이날로 생각하며 「어버이다운 어버이」로서 부끄러움 없는 일을 하면 우리사회는 한결 훈훈하고, 어버이날을 맞아도 좀더 의연해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마지막 덕목으로 기꺼이 지켜가고 있는 「효」도 이런 가운데 당기를 발산하고 이 사회는 인간다운 삶의 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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