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장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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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나에게는 올해 55세인 멋장이 이모가 있다. 어머니의 4자매중 막내인 이 이모는 멋 잘내고 살림 잘 하고 늘 신선한 감각을 지니고 있어 나와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처럼 가까이 지내고 있다.
내가 패션 디자이너가 된 이후에 이모는 딸과 함께 내옷을 애용할 뿐 아니라 주변친지들에게도 어찌나 내 옷을 선전해(?) 대는지 나는 보수를 지불하지 않는 1급 홍보관을 둔 셈이다.
그 이모를 얼마전 친척의 병 문안을 갔다가 만났다. 『얘! 나는 얼마전 봄옷을 사러 네 가게에 들렀다가 발길을 돌렸다. 작품은 조금만, 그냥 평범한 옷을 많이 만들어라. 너무 앞서가는 디자인은 소화하기 힘들어 잘 안팔린다. 네옷은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해.』
이모는 나를 보자 안타까와하며 충고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올봄부터 내가만드는 기성복의 분위기를 대폭 바꿨다. 작품성 있는 디자인 8에, 평범한 일상복 디자인 2의 비율로 옷을 만들고 있는데, 이는 종전의 비율을 반대로 바꾼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얼마나 옷이 흔한가. 시장에 가도, 거리의 기성복 가게에 가도 값싸고 입을만한 옷들이 가득 넘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이른바 디자이너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작품성이 깃든 옷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해외시장을 겨냥해 경쟁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독특한 개성이 깃든 옷이 아니고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각 매장의 매출이 뚝 떨어지며 사방에서 압력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우선 회사를 유지해 나가려면 매출이 오르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또 갈등이 시작된다.
5년전 쯤이던가? 미국에서 발행되는 일간 패션지 위민즈 데일 리가 『상업주의와 예술 사이에서 울고 있는 「이세이 미야께」』란 제목으로 일본 출신의, 지금은 세계 정상급이 된 한 패션 디자이너의 딜레머를 다룬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그까짓 옷이 뭐야. 입어서 편하면 되지. 예술은 무슨…』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 우리 같은 디자이너의 생각이다.
근본적으로 나는 옷이란 그 자체가 아름다워야 할 뿐만아니라, 옷이란 매체를 통해 입는 사람의 내면의 멋이 표출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잔가지를 모두 쳐낸 굵은 선, 신비스런 배색의 옷을 나는 지향한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만큼 받아들여질 것인가.
나를 지극히 아끼고 사랑하는 이모까지 외면하는 옷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요즈음 많이 슬프고, 의기소침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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