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호 사회부기자|대학생들의 상쾌한 토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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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학은 역시 대학, 대학생은 대학생이었다.
대견스럽고 흐뭇하고 신선한 감명에 눈이 다시 뜨이는 느낌이었다.
최루가스와 화염병과 원색의 구호와, 몸을 불사르는 항의가 엇갈리고 있는「잔인한 계절」의 대학가, 그 혼돈의 복판에서 벌어진 대학생들의 한마당 토론.
지난달 30일 상오 서울대 아크로폴리스광장에서 벌어진 사회대 1학년 학생 3백여 명의 「자유토론」(1일자 중앙일보 6면 보도)은 근래의「가장 인상적인 사건」만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겨우 두 달, 부모나 교수의 눈에는 아직도 철부지만 같을 대학신입생들이「수업거부문제」를 놓고 벌인 2시간의 토론은 솔직이 말해서 의정 4O년의 연륜과 상관없이 논리도 매너도 확립이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은 국회의정단상의 질의 답변보다 월등한 수준이었다고 하면 과장일까.
수업을「거부하자」는 쪽이나「수업거부를 거부한다」는 쪽이나 정연한 논리로 자기 주장을 폈고 발언자나 청취자나 공동의 토론참가자라는 인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다. 저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것, 이견은 단결의 저해요인이 아니라 활력의 원천이라는 것, 자유토론을 통해 이견은 보다 나은 , 합의에 이를 수 있으며 그 과정을 통해 성원들은 진정한 동일체의식을 굳히게 된다는「민주」의 초보적 정리가 하나의 축소된 모형처럼 전개됐다.『어용학생 물러가라』는 야유가『조용히 얘기를 들읍시다』는 반론에 잦아들고『38대 38로 수업거부를 결정했지만 38표는 결코 적은 수가 아니므로 반대의견까지를 포괄하는 방안이 나와야한다』는 성숙한 의식이 표출됐으며, 끝내는 함께『민주주의만세』를 외치고 『우리는 누구보다 대한민국과 우리민족을 사랑한다』는 구호를 제창하고 토론을 끝내는 대학생들을 보고 사회의 어른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애국」을 독점하고「민주」와「정의」를 전유하는 양 자기만의 의견과 입장과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마주보고 달리는 기관차 같은」경직된 어른들의 단세포적 사고로 이 젊은 시민들의 자유와 성숙을 지도할 수가 있을까.「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영국의 옛시인 말마 따나 어른들이 겸허하게 젊은이들을 배워야만 할 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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