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엘리트 망명, 통일 열망 때문 아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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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3호 31면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광복절 연설에서 “통일은 북한 당 간부와 주민 모두가 어떠한 차별과 불이익 없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이 북한 고위 간부들에게 보내는 통일에 대한 초대이며, 심지어 현 북한 정권을 전복시키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 고위 외교관의 망명과 맞물려 이런 식의 초대가 북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생각해 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통일 한국에서 북한 사람들의 형편은 어떻게 될까. 일반적으로 남한이 북한보다 훨씬 잘 살기 때문에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들의 상황은 전체적으로 나아질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부유한 쪽과 가난한 쪽이 합쳤던 경우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독일의 경우 통일 이후에 지금까지도 나아진 것은 없고 되레 더 가난해졌다고 말하는 전 동독인들이 있다. 동독에서 변호사로 일했던 한 친구는 통일 이후에도 똑같은 집에 살며 똑같은 소득을 얻고 있다. 또 다른 전 동독인은 형편이 나아지긴 했지만, 전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멘의 경우 상대적으로 부유했던 북부 지역의 덕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남부 지역이 결과에 만족하지 못했고, 또다시 나라를 분열시키는 전쟁이 일어났다.


한국의 경우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아마도 북한 농장과 공장의 가난한 노동자들이 가장 큰 승리자가 될 것이다. 관료주의와 비료 부족으로 비효율적인 북한 농촌은 남한의 기술과 노하우·기계·비료 지원으로 주민들의 생활 수준이 빠르게 올라갈 것이다. 공장 노동자들의 실질임금도 상당히 빠르게 오를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들은 심각한 혼란을 맞이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이들이 살고 있는 집은 아마 민영화될 것이고, 그들은 생사가 걸린 결정을 내리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는 굉장히 어렵고 충격적인 과정이라는 것이 다른 곳에서의 경험으로 드러났다.


통일에서 이득을 보는 또 다른 집단은 비공식 상인들이다. 독일과 예멘이 통일했을 때 이들은 매우 다른 경제체제의 갑작스러운 통합으로 인한 경제 개방을 아주 빠르게 이용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 소시지 상인들이 동베를린 지역에 나타난 것을 기억한다. 동독에서는 소시지의 질이 낮고 부족했기 때문에 동독인들은 서독의 소시지를 갈망하고 있었다. 비록 비공식 상인들은 도덕적으로 의심쩍은 경우가 많았고 일부는 법을 어기기도 했지만, 그들은 빠르게 부자가 됐다. 통일 한국에서도 장마당에서 배운 기술을 빠르게 적용하는 일부 상인들은 큰 부자가 될 것이다. 또 북한의 상인들이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에서 경제력이 남성에서 여성의 손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전환을 맞을 수도 있다. 남성 중심 사회인 북한에서 이는 매우 충격적일 것이다.


대부분의 북한 사람들이 통일의 혜택을 볼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의 정치적 힘을 독점하고 있는 소수의 엘리트는 이득을 볼 것 같지 않다. 독일과 예멘의 경우를 보면 존경받으며 비교적 높은 수준의 생활 수준을 유지했던 공산당 엘리트들은 삶의 질이 통일 이후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급작스럽게 떨어졌다. 독일 통일 당시 북한은 간부들에게 동독의 당 간부들이 궁핍한 상태로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여줬다. 물론 고위 간부들이 남한과의 통일을 모색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였지만 영상 자체는 사실이었다. 예멘에서도 그랬다.


똑같은 일이 통일 한국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 현재 북한 정권의 고위 간부급은 물질적으로 편안한 삶뿐만 아니라 높은 사회적 지위와 존경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남한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상지식이나 경력은 쓸모가 없을 것이다. 대부분 고령인 고위 간부들은 평양 중심의 주거지를 잃고 자신보다 어린 남한의 고숙련자 밑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복잡한 관료주의가 필요 없는 시장경제에서는 이들 대부분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남한 주도의 통일에 북한 엘리트들이 가담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 엘리트들로서는 자신들이 가진 것을 지키는 게 더 나을 것이다. 북한 정권은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최근 북한 경제의 일부 성장으로 인한 혜택 대부분을 평양에 사는 엘리트들에게 몰아주고 있다. 평양에선 커피숍과 레스토랑이 속속 들어서고 도시에서 둘째로 큰 쇼핑몰이 곧 개업할 예정이다. 도로에 차도 늘어나고 있다. 늘어나는 망명이 통일에 대한 북한 엘리트들이 열망이 커졌다는 신호로 보기도 어렵다. 망명자로서의 삶과 통일 한국에서의 불확실한 새 인생은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은 당근과 더불어 채찍도 사용한다. 2013년 이후 몇몇 고위 간부들은 정권에 의해 제거됐다. 결정적인 증거는 없지만, 그들은 처형됐거나 적어도 평양에서 추방돼 하찮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정권을 지지하면 너는 편안할 것이지만, 조금이라도 불충을 보인다면 무거운 처벌을 받을 것이다.


통일에 있어서 북한만의 독특한 면은 또 있다. 북한 사람들에게 정권은 단순한 정부 이상의 의미다. 시골 사람들뿐 아니라 평양의 엘리트들에게도 정권은 거의 종교적 경외의 대상이다. 여전히 북한 사람들은 자신의 지도자가 반신(半神·semi-divine)이자 완벽하며 절대 틀리지 않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는 단순히 북한의 선전이 아니다.


2008년 김정일 사망설이 나돌았을 때 나와 이야기를 나눈 북한 사람들은 김정일 없는 북한을 상상하지 못했고, 그런 생각 자체에 속상해했다. 대다수 북한 사람들에게 남한 주도의 통일이란 거의 신성모독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의 엘리트들은 통일보다는 현 정권의 유지를 더 선호할 것이다. 북한 정권은 엘리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더 많은 소비용품과 편의시설을 제공해야 한다. 북한 정권이 이런 요구를 맞출 정도로 충분한 부를 확보할지는 확실치 않다. 최근 고위 외교관의 망명에서 보듯이 정권에 대한 충성 경쟁과 해외에서의 새로운 삶을 저울질하는 경우도 늘어날 것이다. 시간은 북한의 편이 아니다. 나는 이 덥고 긴 여름에 평양의 엘리트들이 수영장 옆에 앉아 박 대통령의 연설문을 읽고 깊은 고민에 빠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올해가 평양의 마지막 여름이 아니고 광복절 연설도 마지막이 아닐 것이다.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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