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소통의 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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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3호 30면

남편: 왜 주행선을 바꾼다는 방향표시 신호를 빨리 안 넣는가. 한두 번 얘기한 것도 아니고.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먹으니 참 바보군!


부인: 아니 세 번 얘기해 놓고, 왜 이리 난리야.


남편: 세 번이 적냐. 이 정돈지 몰랐네. 에이 답답해 못해 먹겠다.


부인: 그래! 당신은 삼십 번 삼백 번 얘기해도 안 고친 게 얼만데. 이까짓 걸로 못해 먹으면 난 벌써 골백번 같이 살지 못했을 거다.


남편: 이런 데서 왜 그따위 막말을 하냐. 정말 수준이하군.


아내: 날 또 무시하네. 당신은 내 인생을 얕잡아 보는 데 선수야. 이제 더는 못 참아 -


남편: 나도 못 참는다. 그래 잘됐다, 이 참에 -


필자가 폭력적인 언어가 소통에 얼마나 큰 적인가를 설명하는 사례다. 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 이런 경우는 언어적 공격(verbal aggression)으로 분류된다. 언어적 공격은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거나 변호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상대의 자존심을 공격하여 상처를 주고, 상대방이 자기 자신에 대하여 비하하거나 부정적으로 느끼게 하는 언어행위(인판테와 위글리)이다.


언어폭력으로 인한 갈등은 큰 심리적 상처를 남기고 후유증은 이혼과 같은 관계의 파국을 초래한다는 게 기존의 연구결과이다. 부드러운 말로 의사를 교환했다면 운전연습이 끝난 후에 즐거운 치맥 파티를 했을 터인데 정반대로 서로에 대한 혐오로 끝난 것이다. 언어폭력이 천국과 지옥의 경계를 가른 셈이다.


근래 갑의 언어폭력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민낯을 드러내 우리를 분노하게 했다. A4 140여장 분량의 노예근무지침을 강요하면서 온갖 폭언과 욕설, 폭행을 일삼은 재벌 3세 사장이 그 경우다. 3년간 12명의 기사를 교체했다니 3개월에 한명의 기사를 폭언의 대상으로 삼은 셈이다. 또 다른 대형 건설사의 3세는 사이드 미러와 백미러를 접은 채로 운전을 하게하고 미러를 펴면 쌍욕을 해댔다. 수행가이드는 폭언을 하더라도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안 되고 눈을 마주쳐서도 안 되고,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지시한다. 어떤 부장검사는 부하 검사가 결혼식장에서 따로 술 마실 방을 찾지 못했다고 모욕적인 언행을 하고, 예약한 식당과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욕설, 폭언, 폭행을 자행하여 급기야 자살하게 만들었다.


화산 같이 타오르는 올 여름 폭염에 시민들은 누진제 폭탄요금 우려로 에어컨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그런데 시민들을 향해 “요금 폭탄이란 말은 과장”이라면서 “벽걸이 에어컨을 하루 3시간 30분 틀면 한 달 전기 요금이 5만 3000원에서 8만원으로 늘어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고위관료의 말은 그럴듯하게 현실을 왜곡하는 불통의 언어폭력이다. 대통령의 한마디면 일사천리로 서둘러 처리할 누진제 개편을 여론의 한결같은 요구에도 필요 없는 일이라고 한 탁상행정 공무원의 오불관언은 시민과의 소통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 무례한 권력의 언어폭력이었다.


언어공격, 언어폭력은 자신의 입장에 대한 주장과 변호를 넘어 타인의 자존심을 공격하여 상처를 주고, 자신을 비하하거나 부정적으로 느끼게 한다. 그런 점에서 젊은 검사의 아까운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다. 언어폭력은 인격과 능력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와 폄하, 모욕과 악담, 괴롭히고 조롱하며 저주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3년 동안 12명이나 교체되고, 백미러를 접고 운전하면서 스트레스와 조롱을 받아야 했던 운전기사는 인격과 영혼을 모독당한 것이다. 타인의 신체, 소유물, 정체성, 논쟁적 이슈와 자유를 부당하게 통제하려는 자들은 민주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열린 소통의 적이다.


김정기한양대?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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