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 오는 소리-이춘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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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봄 햇살이 커튼 틈을 헤집고 거실에 퍼지면 부시시 눈을 비비며 달려와 엄마의 허리을 껴안는 딸아이의 아침인사를 시작으로 우리 집은 방문마다 소리를 내며 부산스러워진다. 아들 녀석은 덜렁거리는 성격 그대로 얼렁뚱땅 세수를 마치고 책가방을 챙기며 준비물 대령하라는 명령으로 엄마를 불러대기 시작한다.
딸 아이는 제법 나름대로 꼼꼼히 자기가 차근차근 챙긴다
아침 식탁에 앉으면 음식보다 풍성한 이야기 메뉴들 할수 없이 재촉해야하는 엄마의 잔소리·딸아이의 머리를 정성스레 빗기고 단정히 옷을 입혀 가방을 메어주면 녀석은 오빠이면서도 샘이라도 나는 듯 두팔을 벌리고등을 돌려댄다.
자기도 가방을 메어달라는 뜻이다.
못본체 엄마가 딴일에 신경을 쓰면 현관에 버티고 서서 아빠의 출근길을 막는다.
능청스런 모습에 아빠가 알밤을 한대 쥐어박고는 메어주면 『안 감사합니다. 다녀오겠읍니다』 하고 싱글거리며 현관을 나선다.
창문을 열고 『차조심해요』를 외치면 돌아서서 새 식구가 손을 흔든다.
작은 입을 뾰족이 내민듯한 개나리가 활짝 핀옆을 마주보며 재잘거리는 등교길의 아이들, 또 마냥 즐겁기만한 아빠의 뒷모습.
가물가물 멀어져는 모습에 창문을 닫고 돌아서면 왜 이리 적막할까? 이상스런 소외감이 가슴을 파고든다.
이건 중년이 오는 소리라고 들었는데….
난 흐르는 시간에 밀려가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잡념을 버리고자 벌떡 일어난다.
구석구석 먼지를 털며 부지런히 치운다. 청소가 끝나면 아이들처럼 악보를 꺼내 놓고 새로 시작한 기타공부를 해야지. 책도 읽어 화제도 풍부히 하고….
예쁜 내 아이들이 몸도 크고 지식도 깊어 가는것과 발마춰 나도 사려 깊고 아는것이 많은 신뢰할만한 엄마로 성장해야지. 그것이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오래도록 마음과 대화가 통하는 상대로 남는길이리라….<서울강남두개포동 주공아파트110동2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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