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용질서-이형기<동국대교수·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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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질서를 지키는건 좋은 일이다. 그 질서가 무너져버리면 법은 뒷전으로·밀려나 버리고 주먹과 뻔뻔면함이 활개를 치게된다 그러니까 주먹파 뻔뻔함이 남보다 못한 나 같은 약자는 정말 간절하게 질서가 잘 지켜지기를 바라지 않을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질서 지키기도 그 추진의 동기가 잘못되어 있으면 간절한 바람은 기가 죽어 버린다. 이를테면 86과 88의 행사 때 외국인용이 대거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 사회의 무질서함을 보게되면 곤란하지 않으냐는 투의 논리가 그러하다.
질서가 잘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 있어서의 주먹과 뻔뻔함의 큰소리는 물론 문명을 등진 행패가 아닐수 없다. 그것은 연장시켜나가면 「밀림의 윤리」에 도달하는것이다. 어찌그런 글을 외국손님에게 보일수 있느냐고 걱정도 하고 꾸짖기도 하는것은 사리의 당연한 귀결이라하겠다.
그러나 잠깐하고 나는 여기서 한가지 일을 상기시키고 싶다.
질서는 외국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삶의 평안함과 그 윤리적 향상을 위해 지켜야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86, 88이나 외국인들의 눈을 앞세우는 질서지키기 운동은 이점을 아주 몰각한것은 아닐지 몰라도 분명 그것을 가벼이 보고있다.
그랬거나 말거나 결과적으로 잘 지켜지기만 하면 그만 아니냐고 「꿩 잡는게 매」라는 속담을 원용해선 안된다. 그러한 논리는 질서서 지키기란 사회생활의 기본덕목마저도 외국인의 눈 때문에 있는 것이란 무서운 착각을 은연중 사람들의 뇌리에 심어주기 쉬운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의식에 의해 지켜진 질서는 외국인의 눈이 없다고 생각되는 순간 무질서의 혼란으로 되돌아가게 되다.
어디 그뿐인가. 더욱 기막힌 것은 그것이 비굴한 사대주의와 매사에 있어서의 눈가림식 사고력식용 길러준다는점이다. 외국인을 위한 전시용 질서지키기 운동이 있다면 제발 그만 둬달라고 말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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